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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홀로포닉스, 시작과 현재

 몇 년 전에 누리꾼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던 것이 있습니다. 홀로포닉스(Holophonics)라고 하는 신기한 음향입니다. 이어폰이나 헤드폰을 끼고 들으면 마치 나를 둘러싼 360도 사방에서 들리는 사운드였습니다. 미용실에서 머리 손질하는 소리, 머리 근처에서 벌이 날아다니는 소리 등 정말 진귀한 체험을 느끼게 하는 탓에 많은 사람들이 신기할 수밖에 없는 소리였습니다. 그때 인기를 끌었던 건 사실 효과음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홀로포닉스가 유명해진 그 무렵 이런 저런 시도가 많이 시작되기도 했습니다. 5.1채널이나 그 이상의 사운드시스템이 이미 있지만 홀로포닉스가 화제가 된 건 2채널, 즉 단순히 이어폰뿐인 스테레오 환경에서도 그런 체험이 가능했던 까닭이었죠.





사실 이 레코딩 방법은 크게 어려운 절차를 거치는 건 아닙니다. 먼저 사람 머리와 비슷한 더미헤드(가짜머리)의 양 귀에 각개의 마이크를 장착한 후에 원음 사운드를 그대로 재생해 재녹음하는 절차에 불과합니다. 재녹음 과정에서 원음은 신체 구조를 거치며 일어나는 왜곡, 변형 등이 녹음 과정에서 적용되고 그대로 재현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재녹음된 걸 듣게 되면 원음보다 더 실감나고, 입체감이 극대화되는 것이 바로 홀로포닉스, 바이너럴 레코딩의 목적입니다. 한편 이런 기술은 영화에서도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월다이징(Worldizing)이라는 기술입니다. 단어 그대로 '소리의 현실 세계화'하는 방법입니다. 실제 영화 속 로케이션에서 총소리나, 음악 소리를 재녹음해서 실제 영화 속 효과음으로 사용하는 방법으로 몰입감과 실제감을 더 살리는 기술입니다. 영화 '대부'에서 총격씬에서 사용되어 유명해진 방식입니다.





사실 홀로포닉스의 기술이 근과거에 탄생된 건 아닙니다. 바이너럴 레코딩(Binaural Recording)이라고 불리는 이 녹음 방식은 1880년대에 처음 등장했습니다. 시어트로폰(Théâtrophone)이라는 단말기에 쓰였습니다. 이것은 오페라를 현장이 아닌 전화선을 통해 원거리에서 감상할 수 있게 하는 일종의 통신 장치입니다. 녹음 과정의 번거로움, 이에 따른 비싼 레코딩 비용 때문도 있었고, 과거 워커맨 같은 소형 기기가 보급되기 전에는 헤드폰은 번거로운 것으로 여겨진 탓에 헤드폰을 장착하고 적극적으로 즐길 수 있는 이 기술은 그다지 관심을 끌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다 소형 기기,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인해 헤드폰은 누구나 가지고 다닐 수 있게 되었고, 홀로포닉스가 다시 각광 받게 된 것입니다.




사실 이 기술은 이제 더 화제가 되고 많은 회사들이 관심을 가질 가능성이 큽니다. ASMR을 통해 이미 사람들에게 널리 소개된 측면도 있고, VR, MR, AR 같은 기술이 우리 일상 생활에 점점 더 영향을 끼져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VR은 이미 게임 산업에서 어느 정도 자리잡은 기술으로 등극했고, 게임에서 홀로포닉스는 VR의 화룡점정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시각의 완벽한 가상화에는 청각의 완벽한 가상화가 동반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가상현실'에서 '가상'이라는 글자가 희미해지기 때문이지요. 앞으로 체험에 대한 대중의 역치가 상승한 만큼 청각에 있어서 제작사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고, 그 과정엔 홀로포닉스가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소개하고 싶은 홀로포닉스 팀이 하나 있습니다. 이미 유튜브에서 3d 사운드, 홀로포닉스 등의 키워드로 검색하면 여러 채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중 주목할 만한 작업을 한 팀이 있습니다. 'Binaulab'이라는 브라질 팀입니다. 이들은 과거 인기 많았던 유명 곡을 바이너럴 레코딩을 통해 실감나는 곡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들의 작품은 개인적인 평가로는 '재녹음'이라는 단어보다 편곡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그만큼 원곡과는 또 다른 쾌감이 느껴지고 그 몰입감도 원곡에서는 겪어보지 못했으니까요. 가장 조회수가 많은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가 단연 캡짱입니다. 건반은 내 왼쪽에서 울리고, 기타와 드럼은 우측에서 들립니다. 그러는 동안 머큐리의 보컬은 나를 둘러싸고 빙글빙글 돌면서 들립니다. 가장 절정은 곡 중간에 오페라 파트입니다. 오페라에서만 들리는 다양한 층위의 보컬이 각기 분리되어 사방에서 쏟아집니다. 이 파트를 통해서 Binaulab 팀이 단순 재녹음 과정이 아닌 음분리를 위한 개별적인 리마스터링을 하지 않않나 싶기도 합니다.

또한 바이너럴 레코딩이 시작하게 된 계기가 오페라였는데,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속 오페라를 통해 바이너럴 레코딩의 즐거움을 겪게 되니 신기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