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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인본주의로 기억될 유로 2020, "우리는 인간이다!"

연대, 보호, 이해, 관용, 공감, 회복, 책임이 담긴 유로2020 한 장면=에릭센이 쓰러진 후 인간벽을 세워 주변을 둘러싼 덴마크 선수들. 한쪽은 핀란드 관중이 던져준 핀란드 국기로 가려지고 있다.

 

2021년 유로 2020이 이탈리아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코로나19로 인류에게 악몽을 가져다주면서 2020년에 열려야 할 대회가 1년이 지나고 나서야 겨우 열릴 수 있었습니다.

 

한 해 연기됐음에도 굳이 공식 대회명이 '유로 2020'이 된 이유는 코로나19로 점철된 암울한 2020년을 극복했음을 천명하고 싶은 이유였습니다. 비록 코로나19 확산 우려를 예방하기 위해 사람들의 이동을 최소화하기 위해 유럽 11개 도시에서 분산 개최되고, 지역에 따라 코로나19가 악화된 경우도 있지만, 유로 2020은 전염병 창궐과 사회적 단절이 가득한 유럽과 유럽 너머 전 세계 사람들에게 (우리가 다소간 망각해왔던) 인본주의를 다시금 깨치게 하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인본주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는 대회 주제곡이었던, 'We are the people'입니다. 마틴 개릭스가 U2의 보노, 디 에지와 협업했습니다. 가사는 비극을 극복하고 더 나은 것을 이뤄낼 수 있다는 희망 찬 노래입니다. 항상 팔세토 창법으로 긍정적인 노래를 전했던 보노의 신곡이 4년 만에 나온 만큼 반가운 마음은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세계 각 공동체는 재택근무, 사회적 거리두기, 집합금지 등으로 인해 하나로 뭉쳐서 울고 웃을 수 있는 거의 모든 기회를 박탈당했습니다. 그 대신 공동체의 명암은 추가 확진자 수, 사망률, 백신 접종률 등 각종 통계 숫자들로 재단됐습니다. 또 사람들의 불안한 눈은 실업률, 경제성장률, 기준금리 등 경제 지표로 쏟아졌습니다.

 

그렇게 어둡고 차가운 터널을 지나 어쨌거나 첫 국제적 이벤트가 열렸습니다.

 

관중석에 꽉 찬 관중을 만날 수 있었고, 기대감을 품은 수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순간을 다시 볼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로 꽉 찬 경기장은 무엇인가 어색하게 느껴졌고, '피파' 게임이 아닌가하는 착각을 줬습니다. 축구는 경기장과 선수뿐 아니라 관중이 있어야 더 즐거울 수 있고, 선수들도 더 자극을 받고 열정 넘치게 경기에 임한다는 뻔한 사실을 다시금 알 수 있었습니다.

 

덴마크의 에이스 크리스티안 에릭센이 경기 중 갑작스러운 심정지로 큰 충격을 안겨줬지만, 축구계와 팬들은 다시 한 번 훌륭하게 이를 극복했습니다. 상대 팀 핀란드는 골을 넣고 세리머니를 자제했고, 핀란드 팬들은 에릭센의 치료 모습을 가릴 수 있게 핀란드 국기를 던져줬습니다. 경기장의 모든 관중은 국적 상관없이 에릭센의 이름을 외쳤습니다. 모든 축구 팬들은 자국의 승리만큼 에릭센의 쾌유를 응원했습니다. 덴마크는 중심 자원을 잃고도 4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며 에릭센을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았습니다.

 

유로 2020 대회 전체적으로 특정 선수나 이벤트에 집중되지 않았던 거 같은 느낌은 저만 받진 않았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언론을 잡아먹는 대형 슈퍼스타도 없었고, 눈살 찌푸리는 더티 플레이나 유쾌하지 않은 사건에도 사람들은 크게 관심 갖지 않고 대회는 전체적으로 평온하게 마무리됐습니다. 내셔널리티를 내세우고, 승부욕을 과시하면서 축구라는 종목의 효용을 어필하기보다 이해, 공감, 연대 같은 인간적인 가치들이 전면에 두드러졌습니다.

 

코로나19의 시대도 막을 내리고, 인류가 평범하지만 그리웠던 일상을 회복하고 몇 년 전에 그래 왔던 것처럼 수많은 것들을 즐길 수 있을까요? 우리가 코로나19로 얼룩진 시간 동안 잃었던 인간성과 사회성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저에게는 유로 2020이 답을 내릴 수 있는 어마어마한 힌트를 줬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인간이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