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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사라 강(Sarah Kang)의 노래에 담긴 TCK의 희로애락

일하거나 집중하고 싶으나 음악도 듣고 싶을 때, 그러나 익숙해서 흥얼거리거나 감상에 젖어 상념적 삼천포로 빠지긴 싫어서 듣는 노래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도 즐겨 이용할 텐데, 바로 유튜브에 있는 집중을 위한 듣기 편한 음악들입니다. 채널 콘셉트에 맞게 비슷한 분위기, 장르로 계속 음악이 흘러나오는 라이브 영상입니다. 그 중 외국에서 운영하는 한 채널에서 Lo-Fi 음악을 모아놓은 게 딱 취향에 맞아 며칠 동안 그 채널을 틀어놓고 일을 하곤 했습니다.

 

바로 이 영상입니다. 제 최애 앰비언트 Lo-Fi 음악 모음집.

 

가사 없이 듣기 편안한 그 많은 노래 중에 유난히 감성적으로 요동치게 해 제 집중력을 잃게 했던 음악이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그 라이브 영상을 반복하면서  그 노래를 마주할 때마다 집중이 깨지고 알게 모르게 아련함과 쓸쓸함이 풍겨나오는 것을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곡인지 궁금해졌습니다. 열심히 네이버로도, 시리 같이 음악 찾는 앱을 열심히 뒤졌지만, 일부러 Lo-Fi 믹싱이 되고 빗소리도 덧입혀져 있어서 원곡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렇게 몇 번을 음악 찾기를 반복하다가 어쩌다 결과가 나왔습니다. 결과가 기대와는 생뚱맞게 달라 처음엔 비슷한 멜로디를 지닌 다른 곡을 잘못 찾아준 지 알았습니다. 당연히 외국 가수와 외국어 이름이 결과로 나올 줄 알았는데 앨범 커버에 익숙한 동양인, 정확히 말하면 한국인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 여성의 얼굴이 있었고, 아티스트 명은 영어로 적혔지만 성씨엔 익숙한 'Kang'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검색 결과를 보고 "어? 한국 노래였어?"

노랫말 없는 Instrument 버전은 여기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https://artlist.io/album/2618/one 

 

Sarah Kang(사라 강)의 Home이라는 곡이었습니다. 2019년 발매된 EP앨범 One에 수록된 곡이었습니다. 가사 없이도 충분히 울림을 주는 곡이었지만, 놀랍게도 가사를 입힌 원래 곡은 더 심금을 울렸습니다.

 

노래 제목과 아티스트 명을 보면 알 수 있듯, 사라는 가족과 함께 외국으로 건너가 자란 TCK(Third Culture Kid)였습니다. TCK는 부모님의 문화, 언어, 국가적 배경이라는 제1문화 그리고 본인이 태어났거나 유년시절을 보내며 인격 형성과 문화적 영향을 크게 준 현지의 제2문화가 혼합되면서 새로운 정체성을 나타납니다. 이런 새로운 정체성으로 해외 현지에서도 꾸준히 외지인 취급을 받으면서, 한국에서도 흔히 말하는 교포 분위기 때문에 조금은 낯선 존재가 됩니다. 

 

사라의 인스타그램에서 밝힌 내용에 따르면, 그는 부산에서 태어나 8개월이 됐을 때 가족과 함께 시카고와 댈러스로 이주했습니다. 한국 이름은 강은송이었고, 유치원을 나가면서 부모님이 미국 사람들이 발음할 수 있도록 '사라'라는 미국 이름은 지어줬다고 합니다. 그리고 첫사랑은 유치원에서 만난 한 백인 또래였는데, 그 아이가 사라가 백인이 아니라서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얘기를 건너들었던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라는 다문화사회에서 소수인종으로 살면서 근면성실이나 우수한 결과를 내는 등의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 소위 이런 것들을 칭하는 '모범적 소수자 속설(model minority myth)'을 느끼며 자랐다고 합니다. 그래서 좋아하는 것을 좇는 당연한 행위들을 피하면서 자랐다고 합니다.

 

Home이라는 노래 가사를 통해 사라는 본인이 겪은(TCK라면 누구나 겪어볼 만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사라가 어릴 때부터 미국에서 겪은 TCK로써의 혼란과 차별, 예컨대 "너는 영어는 못해도 수학은 잘하겠지? 너네 집은 어디야?"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그리고 성년이 되어 한국을 방문해서 한국사람들에게 경험한 것, 가령 "너는 어디서 왔어? 한국말은 잘해?"라는 질문을 들었던 것 소개합니다. 두 나라의 사회 문화적 정체성을 모두 가지면서도, 주변 사람들로부터 그 어느 한 곳에 제대로 소속되지 못한 존재로 인식되며 '끼인 정체성'으로서 혼란스러워하고, 결국은 '내 집(Home)은 어딜까?"라는 질문으로 점철됐던 외로움과 쓸쓸한 마음을 소개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사라는 차별과 안타까움으로 경험한 정체성 혼란과 집에 대한 질문을 사랑하는 사람들, 가족과 연인에게 찾습니다. 사라에겐 자기 집은 "엄마가 싸주신 도시락에", "언니가 읽어준 동화책에", "그대와 꼭잡은 두손 안에", "둘만의 따뜻한 저녁속에" 있다고 정의합니다. 자신이 안정감을 느끼고 행복을 만끽할 집이라는 공간을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기억과 경험 속에서 발견합니다. 맞습니다. 인간에게 집은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 없이 논할 수 없으니까요. 이 답이 유난히 감동적인 이유는 TCK로서의 슬픔과 쓸쓸함을 극복해냈다는 점에서 더 감동적이었습니다.

 

노래에 담긴 사라가 겪은 이야기와 감정을 발견하면서, 망치로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우연히 발견한 곡에서 이렇게 속 깊은 이야기를 들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는 문화나 예술에 스며든 정체성의 힘에 대단히 놀라기도 했습니다. 수많은 노래를 모아놓은 해외 유튜브 채널에서 노랫말 없는 음악을 통해 한국인 정체성을 가진 아티스트가 토종 한국인을 대상으로 정확히 감성 저격에 성공했으니까요. 한국인 감성만 사로잡은 곡은 또 아니었습니다. 사라 강의 유튜브 채널에 가면, 이 노래에 홀딱 반한 글로벌 팬들의 댓글도 볼 수 있습니다.

 

사족으로, 우연히 오늘 TV에서도 똑같은 멜로디를 들었습니다. 한 가구 인테리어 기업이 광고 BGM으로 Home을 고른 모양이더라고요. 광고가 시청자들에게 환기하고자 했던 이미지가 딱 Home의 가사와도 맞습니다. 광고 기획자도 어쩌면 제가 느낀 감동을 똑같이 느낀 주인공이었겠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