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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혁오 밴드, 뚝배기가 될 것인가. 냄비처럼 식어버릴 것인가.

 



0. 후끈후끈 혁오


 어딜가도 혁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친구들 투성입니다. 여기를 가면 '요즘 혁오밖에 안 듣는다', 저기를 가면 '무한도전에도 나온다던데 쩌는 애들인 거 같다'고 시끌시끌 합니다.

혁오는 아직 정규 앨범 하나 없는 EP 두 개만 낸 새내기입니다. 올 4월에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통해 공중파에 처음 얼굴을 알리고 '장기하와 얼굴들' 소속사에 들어가더니, 프라이머리와의 협업으로 차트 높은 곳도 구경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혁오는 말 그대로 로얄로드를 걷고 있는 중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상하게 혁오에 대해서 또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이들은 록 음악이라는 비주류 음악을 하면서도 한국 음악 생태계에서 유난히 인기가 많은 걸까. 왜 굵직한 이슈 없이 입소문으로 슈퍼밴드가 되었을까.



 1. 인디밴드와는 다른 행보냐?


 인디 밴드는 유독 평단의 평가와 대중의 사랑이 극명하게 갈립니다. 그래서 내실을 갖추고도 언더그라운드에 머무르는 경우가 허다한 이유입니다. 결국 이런 아이러니는 인디 음악가들이 처음부터 끌어안고 가야할 비극이기도 합니다ㅠㅠ..

미국물 먹은 1인밴드 '검정치마'는 등장부터 평단을 놀라게 했고, 평단으로부터 꾸준히 호평을 받은 주인공입니다. 팬은 많다고 할 순 없지만 주변에서 그들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순 있습니. 하지만 검정치마가 대중의 사랑을 받았냐고 묻는다면, '글쎄?'라는 대답밖에 할 수 없습니다. 혁오가 보여주는 초반 돌풍은 검정치마가 2008년 첫 앨범으로 대중음악상을 수상했을 때와 매우 유사합니다. 혁오도 한때 검정치마처럼 이름값을 한껏 드높이고 있습니다.


국카스텐은 어떨까요? 국카스텐은 인디계의 대통령이 되어 오버그라운드로 야심차게 솟구칠 수 있었던 최근 가장 핫한 밴드입니다. 나가수에서 레전드 가수들과 경쟁을 하면서 호성적도 보여주고 밴드의 역량으로 많은 대중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메이저 무대에서 그들을 만날 수 있는 길은 전무합니다. 방송에서, 그리고 흔하디 흔한 스트리밍 음악 사이트 차트에서도 그들의 이름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혁오는 국카스텐처럼 오버그라운드에서 더 오래 살아남을까요?


'장미여관'의 경우는 혁오와 더 유사합니다. KBS 탑밴드2에서 신대철을 폭소하게 한 노랫말과 능글거리는 무대매너로 확실히 음악 팬들 사이에서 '실력있는 또라이'로 각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무한도전 자유로 가요제에서 참여하게 되면서 메이져 무대로의 입성이 성공적으로 이뤄졌습니다. 장미여관의 음악적 역량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지만, 역량만큼 중요한 것은 바로 어떤 음악을 하는가 입니다. 장미여관이 만년 인기 밴드가 되느냐 못하느냐의 당락은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어쿠스틱 악기를 기반으로 록 음악을 표방한 팝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건 장미여관이 록이라는 벤다이어그램 안에 부분 집합이었다는 점입니다. 대중은 '비쥬얼 쇼크'와 간드러지는 무대로 장미여관에 환호했지만 이 환호는 몇 년짜리가 되진 못하고 곧 사그러들었습니다. 장미여관은 비주류 음악, 그러니까 록 음악의 색채가 짙었고 이는 요즘 잘 나가는 음악이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은 지금 음악가 장미여관보다 육중완이라는 예능 블루칩이 네이버에서 더 검색되고 있습니다. 예능에서의 육중완의 활약이 아니었다면 각종 OST 참여 기회도 장미여관에게 허락됐을지도 미지수입니다. 장미여관을 보면 혁오가 무한도전 출연으로 음악계에서 장밋빛 미래를 약속받는 건 아닐 거 같네요.



 2. 혁오의 음악?


 혁오의 장르는 규정하기 무척 쉽습니다. '록'입니다. 더 늘여본다면 모던 록 음악. 기타 베이스 드럼의 사운드에 충실하고 실험적인 측면은 거의 없습니다. 밴드가 특징으로 삼는 건 기타 파트 임현제의 신명하는 그루브 넘치는 스트로크와 보컬 오혁의 다소 고음지향적인 허스키 보이스일 뿐입니다. 정리하자면, 혁오는 정형적인 소프트 록음악을 기반으로 대중 일반이 좋아할 법한 묘미를 잘 살리고 있습니다. 혁오는 특정 취향을 저격하기보다 널리 먹히는 스타일을 지향합니다. 혁오의 음악은 특정 상황보다 일상 속에서 어울리며 대규모 록 페스티벌보다 중소규모의 홍대가 어울립니다. 


열거한 특징들이 혁오의 기량을 제한하면서 폄하한다고 느낄 수 있지만, 저는 이것이 혁오에게는 더할나위없는 칭찬이라고 생각합니다. 혁오는 수많은 록밴드들이 무대를 잃어가는 시대에서 이런 음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짧은 기간동안 인기를 끌어올릴 수 있는 슈퍼노바가 될 수 있었고 앞으로 창창한 미래를 선물받을 수 있었습니다. 비주류 음악을 하면서 이렇게 메이저의 무대에 급격하게 빠르게 오른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아직 국내 유명인들 사이에선 메이저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무한도전이 전국에 방영되기 전이지만 혁오의 짧은 디스코그래피만 봤을 때 지금 이 정도는 의아한 사랑이라고 불러도 무리가 아닙니다.



 3. 전망


 하지만 전 냉정한 평가를 내리고 싶습니다. 혁오는 1년 뒤 2016년 중순쯤엔 아마 '인기있었던' 밴드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하고요.

이유는 항상 단순합니다. 비주류 음악을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한국 음악 시장을 주름잡고 있는 주인공들은 사실 혈액형처럼 분류가 단순합니다. 아이돌, 힙합, 일렉트로니카, 오디션 스타, 과거 스타였던 가수. 이렇게 네 부류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도 엮이지 않는다면 인기를 끌기 어렵습니다. 혁오는 어떤가요? 

혁오가 Korea Rock Revival의 선구자가 되지 않는다면, 혁오보다 앞서서 인디계의 첨병이었던 많은 밴드처럼 시나브로 대중의 관심을 잃어나갈 거라 보는게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단, 혁오가 일렉트로니카를 시도한다면 또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요. 프라이머리와의 협업과 오혁이 신스팝을 즐겨듣는다고 한다니 혁오는 앞으로 더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줄 수 있다고도 생각이 듭니다. 그보다 먼저 한번 무한도전에서 얼마나 많은 인기를 받을지 지켜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