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표절 논란?
무한도전 출연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밴드 혁오에게 큰 장애물이 나타났습니다. 바로 표절 논란입니다. 표절 논란은 심심찮게 가요계를 덮쳐왔기에 많은 누리꾼에겐 낯선 논쟁은 사실 아닙니다. 허나 중요한 건 이런 사건들 속에서 표절의 진위여부와 상관없이 구설수에 오른 대상자들이 크고 작게 타격을 입는다는 겁니다. 상한가를 달리는 혁오가 이 여파에 고꾸라질까 걱정스러운 팬들이 많습니다. 작년엔 로이킴이 슈퍼스타K를 통해 혜성처럼 등장해 가요계를 점령할 뻔 했지만 잇다른 표절 논란 속에서 활동이 눈에 띄게 줄면서 대중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기도 한 것처럼 말이죠. 최근엔 자이언티도 오아시스 곡이 표절논란에 휩싸였지만, 오늘 에릭 벨린저가 트위터를 통해서 '표절이 아니다'라고 자이언티의 손을 들어줘 오명을 씻기도 했습니다.(참고)(그래도 비슷한 건 인정하라는 목소리가 많긴 합니다..^^;)
음악가가 표절을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음악가 당사자가 겪는 스트레스 그리고 '표절'이라는 단어 속에 담긴 강한 부정적 늬앙스는 혁오의 진로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요.
1. 팬들의 반발심
이번 사건은 한 음악 커뮤니티에서 한 유저의 표절논란 주장 게시물을 통해 혁오의 표절논란이 번지게 되었습니다. (링크) 그리고 이 게시물이 SNS를 타고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되면서 논란에 불이 지펴졌습니다.
보통 표절 논란 속에서 누리꾼들의 반응은 한 가지로 수렴합니다. '비슷하긴 하네.' 라든가, '이 정도가 표절이면 어쩌라는 거냐'라든가 하는 곡의 유사성에 초점이 맞춰집니다. 하지만 이번 혁오의 표절 시비는 흘러가는 양상이 조금 독특합니다. 이를테면, '뜨니까 지랄이네', '하이튼 우리나라 누구 잘 되는 꼴 못보네'와 같은 혁오에 대한 지지발언들이었습니다. 음악 본연이라는 측면에서 곡의 유사성에 대한 담론보다 홍대를 대표하며 이제 오버그라운드로의 활약이 기대되는 창창한 미래를 앞둔 혁오에 대한 시기꾼들의 꼬장이라는 목소리가 상당히 많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번 표절 논란은 신데렐라를 괴롭히는 마녀를 두고 네티즌들이 죄다 마녀에게 힐난하고 있는 모양새랄까요.
2. 논란의 진행
하지만 사안을 위와 같이 단편적으로, 그리고 한쪽 목소리만 두드러지게 집중해선 안 됩니다. 이번 논란 속 논란(쉴드를 치는 네티즌과 표절을 주장하는 리스너)는 서로 다른 것에 집중하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남 잘되는 꼴 못본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상대편이 시기와 질투로 가득찼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표절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혁오의 음악관을 꼬집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후자의 입장은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그들의 주장이 꼬집고 있는 바는 (우선 표절여부를 차지하고) '혁오 음악의 고평가' 입니다. 혁오는 홍대 인디씬에서 작년무렵부터 유명세를 떨쳐왔고, SNS를 통한 입소문을 타면서 많은 누리꾼들에게 '다른 음악과는 다른 음악'을 하는 밴드로 평가됐습니다. 화룡정점으로 무한도전에서 드러난 인간미와 예능감으로 혁오의 음악에 대한 평가는 더 높이 비상했습니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혁오의 음악은 정형돈의 말처럼 '홍대를 씹어먹을 수 있었고', 다른 음악가들과는 다른 개성 짙은 음악을 하며, 시대를 앞서가는 트렌디함을 담은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음악은 개인 취향을 존중해야하기에 혁오의 음악이 좋고 싫고는 개인적 차원이지만, 이런 객관성에 기반한 음악적 찬사까지 나올 수 있었던 건 분명히 혁오가 여타 수많은 실력있는 홍대 밴드들이 가질 수 없었던 황금열쇠를 가졌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메이져 매스컴의 출연이었고, 이를 강하게 이야기하면 '음악성에 거품이 꼈다'는 것입니다. 무한도전이라는 굵직한 대반전의 기회를 얻었고 이를 기반한 유명세로 음악적 구조틀을 바꿨다고하는 과한 찬사는 음악가가 누릴 수 있는 썩 보기 좋은 로열로드는 아닙니다. 정확히 바로 이 부분이 후자의 무리들이 혁오의 음악에서 꼬집고 있는 점입니다. 분명히 혁오의 음악보다 더 진보적이고 실험적이었던 많은 밴드들이 오버그라운드에서 고꾸라지면서도 그래도 음악적으로는 호평을 받은 사례가 많습니다. 하지만 혁오가 보여주는 양상은 앞서 오버그라운드에 도전했던 다른 밴드들보다 유난히 특출난 것은 아닌 거 같은데도 대중의 평가는 평가절상되었다는 것, 바로 이 점이 헤비 리스너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그들의 의견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절대로 혁오의 뛰는 몸값에 손가락질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들이 티비에서 자꾸 얼굴을 비추는 것에 불만을 가진 것도 아닙니다. 혹자는 혁오 논란에 대해 '뜨니까 별 논란을 다 만드네'라고 주장하지만, '뜨니까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라고 말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할 수 있죠. 성공한 음악가가 되기 위해선 이런 '음악적 견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누리꾼들의 견제들은 문화 콘텐츠, 즉 창의적인 지적재산 테두리 안에서 순기능을 하는 중요한 역할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3. 달을 가리키면 손이 아니라 달을 봐야한다.
표절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한결 같습니다. 혁오는 대중음악이 보여줄 수 있는 전혀 새로운 음악을 하는 게 아니다. 상황을 조금 바꿔서, 혁오가 홍대에서 인기있었던 밴드로써 무한도전에 운 좋게 출연했고, 음악인이면서 좋은 예능인으로써도 인기를 많이 끌었다면 여기에 크게 토달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혁오가 혁명적 음악을 하는 것처럼 비춰지고, 각종 인터뷰에서 혁오가 보여주는 쿨함과 힙스터적인 모습이 혁오가 보여주는 음악과 크게 괴리감이 느껴지기에 이런 '음악적 태클'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혁오를 정말로 좋아하고 미래를 기대하는 팬이라면 헤비리스너들이 내는 목소리의 본질을 조금은 이해해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4. 표절 논란의 이면
혁오는 표절 논란에 '아니다'라고 의사표현을 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팬들은 레퍼런스, 즉 좋아하는 밴드의 음악에서 아이디어를 따오거나 참고했을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사실 혁오가 표절했느냐 안 했느냐는 문제가 아니며 저도 굳이 집착해가면서까지 의문을 던지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진짜로 문제가 되는 건 '왜 자꾸 한국음악 시장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표절논란이 나느냐'입니다.
이 의문에 대해서 창의성과 개성이 정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악적 몰개성, 더 좋은 음악으로의 욕망, 이런 것들이 구실이 되어 자꾸만 부실한 음악을 들고와 표절 문제를 일으키는 건 아닐까요? 개성과 창의성을 기준으로 삼으면 표절 논란 속에서 항상 등장하는 '레퍼런스 주장'도 설득력을 얻지 못합니다. 물론 음악을 창작하는 데 있어서 존경하거나 선호하는 타 음악가의 음악에서 아이디어를 따오는 걸 보고 무조껀 나쁜 시도라 힐난할 순 없습니다. 다만 그 음악을 만드는 데 있어서 음악가는 창의력과 개성은 포기해야 한다는 겁니다. 자기가 발표한 음악에서 그만큼 음악가 자신의 지분을 잃는 셈이며, 장기적으로 봤을 때 다른 음악가들과 비교해서 자신의 색깔이 부족한 음악가로 남게 되는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원점으로로 돌아와서, 이런 점에서 혁오는 표절 논란에 엮인 곡들 속에서 얼마나 자기 지분을 주장할 수 있을까요? 팬들이 말하는 대로 레퍼런스 삼아서 타 곡을 빌렸다면, 혁오는 '홍대를 씹어먹은' 밴드로써의 지위를 여전히 가질 자격이 있는 걸까요.
5. 마치며
혁오는 괜찮은 음악을 선뵀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더 선보일 음악에 궁금증을 자아내는 좋은 밴드입니다. 하지만 누군가 써내려간 비슷한 음악을 했고, 이 유사성은 표절이라는 딱지가 붙든 그렇지 않든 그들만의 톡톡 튀는 자신만의 정체성을 해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받은 건 이와는 별개라 좋은 방송인으로의 혁오에게는 큰 지장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혁오와 혁오의 팬들은 혁오에게 쏟아지는 표절 논란이라는 화살을 주류 매체로의 승격에 성공한 아티스트들을 아니꼽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시기라고 생각하기보다, 혁오가 더 자신의 색깔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촉구의 목소리로 받아들여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