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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라라랜드>, 낭만에 가장 중립적인 영화

Illustration by Chris Gash www.newyorker.com/magazine/2016/12/12/dancing-with-the-stars>

 

 

<다음 글은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0. 낭만은 낭만적인가, 허구적인가?

낭만에 대해 묻는다면, 개개인은 다른 답을 내립니다. 예컨대 체 게바라는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엔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라고 낭만을 논했고, 가수 최백호는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청춘의 미련이야 있겠냐마는 왠지 한 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에 다시 못올 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라며 중년의 낭만에 대해서 노래했습니다.

낭만이 좋은 건지, 불편한 건지 다들 각자의 생각이 있을 테지요. 숱한 신파 영화는 낭만을 팔아 표값을 끌어 모아왔고, 그보다 유니크한 가치를 드러내는 영화들에선 낭만은 줄곧 조소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온갖 영화 속에선 각자의 이야기대로 낭만을 편향해서 해석했습니다.

 

1. ‘로스앤젤레스', '현실에서 불가능한 것'

이 두 단어 모두 '라라랜드(La La Land)'의 뜻풀이입니다. '로스앤젤레스'는 두 주인공이 만나고, 사랑을 꽃피우고, 낭만을 싹틔운 공간적 배경입니다. 그리고 '현실에서 불가능한 것'은 주인공 둘이 마음 속에 품었던 미래를 의미합니다. 각각 세바스찬의 정통 재즈 클럽을 여는 꿈, 미아의 할리우드 스타 배우가 되는 일입니다. 전자는 '낭만적인'이라는 형용사가 어울리는 공간이고, 후자는 낭만 그 자체로 묘사됩니다. 주인공 커플은 서로의 낭만을 알아가며 자석처럼 이끌리고, 응원하고 그리고 갈등도 맺기도 합니다. 어떤 낭만이었냐보다 낭만이 있다는 것 자체가 서로에게 매력이 되었으니까요.

 

2. 실망과 조롱의 대상, 낭만

세바스찬은 옛 친구 키스를 따라 일렉트로닉 음악을 적극 수용한 재즈를 기반의 밴드에서 키보드를 칩니다. 정통 재즈를 살리고 다시 부흥케하려는 그의 낭만을 잠깐 무른 후 내린 현실과의 타협입니다. 그 과정 속에서 세바스찬은 자괴감을 느끼고, 스스로에게 모멸감을 갖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본인의 비겁한 타협을 바라보는 미아의 모습에서 고통이 무척 괴롭습니다. 미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변의 응원과 독려 속에 자신있게 1인극을 직접 쓰고, 자그마한 무대를 갖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그녀가 우려한 대로 주변의 조롱과 싸늘한 반응뿐입니다. 낭만은 이렇게 두 주인공을 비극의 깔때기에 몰아넣는 악덕한 장치로 기능합니다. 낭만이 낭만으로 남지 않았기 때문에 직면해야 했던 아픔이었습니다.

 

3. 이룬 것을 낭만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낭만이란 단어를 잘 뜯어보면, '이뤄지지 않음’이라는 의미가 가장 핵심입니다. 거꾸로 이걸 낭만에서 분리해버리면 낭만은 더 이상 낭만이 아닌 셈입니다. 결국 과거엔 낭만이었다가 낭만이 아니게 된 것, ‘낭만이었던 것’이 있을 수 있되, ‘실현된 낭만’은 불가능한 양태인 것이죠.

라라랜드에서 셉과 미아의 낭만은 무엇인가요. 영화 후반부까지는 자신의 클럽을 여는 것과 할리우드 배우가 되는 일이었습니다. 관객은 자연스럽게 그들의 낭만이 실현되는가에 몰입하게 됩니다. 그러나 두 주인공이 그리피스 공원에서 “Where are we?(우리 어디에 있지?)”라는 질문을 던진 바로 다음 씬부터 이들의 직업적 낭만은 단박에 실현되어 버립니다.

반면 관객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절대 낭만으로 인식하지 못했던 게 불쑥 배신을 저지릅니다. 바로 셉과 미아의 사랑입니다. 에필로그를 통해 관객은 비로소 각자 완전히 다른 길을 걸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영화 내내 당연하고 아름다웠던 둘의 사랑은 180도 낭만으로 탈바꿈합니다. 영화의 마지막 10분은 이들의 진짜 낭만을 추억하듯 새롭게 그려나가며 관객을 뒤흔듭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둘은 미소로 눈인사를 나누고 낭만을 떠나보내며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4. 닫으며

 

‘라라랜드’가 관객에게 사랑 받는 건 하나의 엄청난 뮤지컬을 떠올리게 하는 음악의 역할이 매우 큽니다. 여기에 더해 많은 관객이 라라랜드를 보러 영화관에 찾는 이유는 낭만이라는 가치를 간지럽히고 뒤틀어버린 이야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들 마음 속에 자기만의 낭만 하나 가지고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