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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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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나는 소위 선생님이고 불리는 사람에게 배워본 적도 있고, 그런 사람이 되어본 적이 있다. 제도 교육 12년과 대학 4학년 총 16년 동안 수많은 선생님을 만났다. 16년의 시간은 좋은 선생이란 무엇인지 나만의 기준을 세우는 기간이기도 했다. 6년 넘게 학원에서 알바를 하며 영어를 가르쳤다. 내 생활비를 벌 생각이었고, 즐겁게 일하고 싶은 마음이 가장 먼저였다. 좋은 선생님이라는 기준은 공부를 '잘 가르치는 것'보다 '기분을 잘 구슬려 공부할 의지를 다져주는 것'에 가깝다고 생각했기에 아이들에게 흔히 말하는 멘토가 되고자 했다. 무엇보다 연소자보다 쬐끔 더 살았다고 해서 가르치려 드는 것만큼 무의미하고 꼰대스러운 게 없다고 생각했기에 '군림'하려는 모든 행동을 경계했다. 6년 동안 많다면 많은 친구들이 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먹을 거 줄이고 살 좀 빼겠다는 생각에 점심을 간단하게 먹은 적 있다. 그렇게 남는 점심시간이 40분 정도 있었다. 40분이면 근처 산책 다녀오기 딱 좋은 시간이다. 이상하게 그날은 기묘한 기분에 끌려 근처에 있는 시립미술관엘 갔다. 미술관 1층부터 3층까지 각기 다른 전시가 알차게 준비돼 있었다. 특히 3층에서는 젊고 열정 있는 작가들이 준비한 현대미술 작품들이 즐비해 있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 전시장에 들어서려는 순간 나를 제지하던 사람이 나타났다. "음료 들고는 출입이 안 돼요." 내 손에 들려 있는 뜨거운 커피 한 잔. 그 별거 아닌 액체는 수많은 열정을 쏟아내 완성시킨 작품을 해칠 수 있는 유해물질이었다. 전시 관리자 말은 내 발걸음을 뚝 멈춰 세웠다. 얼음 가득한 시원한 커피였으면 한달음..
空間, '빈 곳'이거나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자리'거나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양하기 마련이다. 알고 보면 다들 유난히 자기중심적인 방식으로 세상을 받아들이곤 한다. 나에겐 공간, 그러니까 지도 위 2차원 세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인식 틀이다. 나는 공간으로써 세계를 받아들인다. 내가 걸었던, 방문했던 공간은 서랍 속 고이 숨겨둔 보물과 같다. 고등학교 야자 끝나고 버스 타러 가기 위해 걷던 피맛골은 사색하기 퍽 좋았다. 지금은 으리으리한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사라져가면서 아쉬움을 주지만, 그 공간은 나에게 추억이 가득한 공간이다. 대학교 앞 저렴한 밥집이 즐비한 시장통도 의미심장한 곳이다. 과거 1960년대 그곳 옆으로 기동차가 지나다녔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을 때가 있었다. 기동차는 청량리를 출발해 뚝섬 유원지까지 사람들을..
송민호, 차라투스트라 그리고 프레디 머큐리 '신서유기'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게임은 출연자가 즉석에서 사진이나 그림을 보고 문제를 푸는 인물, 캐릭터 퀴즈다. 이 퀴즈가 인기를 끌면서 나영석 피디는 같은 방식으로 속담, 책 이름 맞추기까지 동원했다. 책 이름 앞부분을 나 피디가 말해주면 바로 책 이름 뒷부분을 출연자들이 외쳐야 한다. 송민호가 풀어야 했던 문제 중 "차라투스트라는..."가 있었다. 송민호는 아무 대답을 하지 못했고 "짜라투스트라가 누구예요?"라며 소리를 질렀다. 정답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Also sprach Zarathustra)'였다. 부제는 '모두를 위하거나,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Ein Buch für Alle und Keinen)'이다. 독일 근대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쓴 책이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
바다로 간 기자 하루에 슬픈 일 기쁜 일 소식을 다양하게 들었던 어제 유난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제가 한 언론사 실무평가를 준비하면서 만난 분 이야기입니다. 그분은 저보다 2살 연상이었고, 그 언론사를 지원했을 때 당시 여의도에 있는 한 경제지 기자였습니다. 그분이 해준 이야기에 따르면 그곳에서 기자의 역할보다 영업과 수익 창출을 위해 주로 일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회의감이 들었고, 저널리스트의 역할을 실현할 수 있는 곳으로 이직하기 위해 다양한 언론사 공채에 도전을 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저는 그분을 실무면접 전날 급하게 결성된 스터디에서 처음 봤습니다. 지금 한 언론사에 적을 두고도 왜 새로운 언론사로 지원을 하는지부터 앞으로 무엇을 꿈꾸는지까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
낙하산(Parachutes) 낙하산(Parachutes)는 2000년에 공개된 콜드플레이의 데뷔 앨범이다. 브릿팝이 세계를 호령할 무렵, 브릿팝을 가장 잘 드러낸 앨범인 동시에 콜드플레이만의 진기한 색을 동시에 드러내는 데 성공한 앨범이다. 'Parachutes' 앨범은 훌륭한 성과를 내며 콜드플레이가 21세기를 대표하는 밴드로써 음악 시장에 낙하산을 타고 연착륙했음을 의미했다. 여전히 앨범에 수록된 'Yellow', 'Shiver' 같은 곡은 사랑 받고 있다. 스페인어를 얕게 공부하며 알게 된 점은 'Parachute'처럼 'para'를 접두사로 한 단어가 많음을 알게 된다. parasol, paradox 등. 라틴어 계열의 언어로써 의미는 간단하고 일맥상통한다. para는 against와 비슷한 의미를 띈다. 뒤에 따라올 말에 ..
본능적 시간 퇴행 다음과 같은 사람들을 찾아보기란 상당히 쉽다. 늙는 걸 싫어하는 사람, 옛 추억에 잠기는 어른, 옛날 노래만 찾아듣는 부류, 예전에 봤던 영화를 계속 찾아보는 친구들, 어릴 적 동네를 찾아가는 작자들. 이들의 동기는 제각기 달라보이지만, 어떤 공통점을 찾자면, 단연 시간을 되돌리려는, 또는 시간을 붙잡아두려는 심산이 있다는 점이다. 이 사람들은 시간을 붙잡고 싶은 욕구를 채우려고 심지어 생산적이지 못한 행위를 한다는 것이다. 도대체 우리는 추억을 왜! 추억하는지, 그에 대한 나만의 답이라고 할 수 있다. 이건 내 가설이다. 사이비다...ㅠㅠ 알바뛰는 학원, 이제 햇수로는 7년째가 되는데, 오늘 이곳에 손님이 찾아왔다. 그리 크지 않은 학원을 찾는 이들은 초중고 학생들 그리고 드물게 상담이나 학원비를 내는..
태풍 '차바' 그 이후, 제주도 11월 6일부터 3일간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갔습니다. 전에는 늘 여름에만 방문했던 제주도였고, 혼자나 친구들과 함께 했었습니다. 그래서 가족과의 제주 여행은 기대와 낯섦 둘 다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조건부가 달린다고 하더라도 제주는 역시 제주였습니다. 햇살과 어우러지는 수목과 봉긋하기부터 우람하기까지 한 오름까지 고개를 돌리는 족족 경탄의 대상밖에 없었습니다. 정신 없이 제주에 취하는 가운데도 이따금씩 알 수 있는 구석이 하나 있었습니다. 태풍 '차바'의 흔적이었습니다. 얇은 가지들은 죄다 송두리째 부러진 수많은 해송들을 마주하면서, 날개 하나가 부러진 풍력발전기를 보면서, 산굼부리의 억새가 절반은 날아갔다고 전하는 해설을 들으면서 한 달 전 제주를 할퀴었던 존재가 있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