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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본능적 시간 퇴행



 다음과 같은 사람들을 찾아보기란 상당히 쉽다. 늙는 걸 싫어하는 사람, 옛 추억에 잠기는 어른, 옛날 노래만 찾아듣는 부류, 예전에 봤던 영화를 계속 찾아보는 친구들, 어릴 적 동네를 찾아가는 작자들. 이들의 동기는 제각기 달라보이지만, 어떤 공통점을 찾자면, 단연 시간을 되돌리려는, 또는 시간을 붙잡아두려는 심산이 있다는 점이다. 이 사람들은 시간을 붙잡고 싶은 욕구를 채우려고 심지어 생산적이지 못한 행위를 한다는 것이다. 도대체 우리는 추억을 왜! 추억하는지, 그에 대한 나만의 답이라고 할 수 있다. 

이건 내 가설이다. 사이비다...ㅠㅠ


알바뛰는 학원, 이제 햇수로는 7년째가 되는데, 오늘 이곳에 손님이 찾아왔다. 그리 크지 않은 학원을 찾는 이들은 초중고 학생들 그리고 드물게 상담이나 학원비를 내는 학부모가 전부다. 더 드물게 오는 이들이 있다. 학원을 다니고 이제는 징그럽게 어른이 되어 돌아오는 경우다. 군대를 간다거나, 대학에 합격한 후 인사차 학원에 방문하는 것이다. 어리숙한 표정으로 손에는 값싼 과일 바구니도 없는 경우가 허다 하지만, 학원 선생님과 공간의 기억을 갖고 고마운 발걸음으로 학원에 찾는다. 희소성의 원칙으로 따져도, 이런 건 한달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드문 이벤트라 진귀하기도 하다. 그래서 학원 선생님들은 물론, 나까지 마음 속에 기쁨과 뿌듯함을 한 바가지 받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은 내가 학원에 막 알바를 시작할 때 막 중2병을 겪고 있었던 6명이 한꺼번에 찾았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얘네가 학원을 그만 두면서 보지 못하게 됐다. 이제는 시간이 훌쩍 지나 수능을 마치고 술을 마실 수 있는 나이에, 대학 발표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하더라. 한 놈이 재수를 시작하기 전이라 더 의미를 부여한 모임이기도 했다. 놈들은 훌쩍 자란 키에 산만하고 정신 없는 성미는 다 어디로 간 걸까 싶기도 했다. 그런데도 끔찍히 싫었던 공간과 인연을 찾아 학원에 온 건, 무슨 까닭일까. 또 그들을 마주한 선생님의 기쁨은 어디서 기원하는 것일까.


그곳에 있던 모든 이는 본능적 시간 퇴행에 빠졌다. 정신 없이 넘어가는 인생 굴레를 멈추고 과거를 돌아보고, 지금을 붙잡아 미래를 막고 싶었던 것이다. 모든 것이 변하는 자연적 시간 흐름 속에서 절대 변하지 않는 것은 지난 것의 기억과 경험이다. 그런 것들에 대한 향수와 집착이 바로 시간 퇴행의 기원이다. 기억 속 학원의 모습, 내가 듣던 음악, 살던 동네는 변하지 않는다. 변하지 않는 것을 실제로 감각하면 우리 머리는 시간 흐름에서 벗어난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단편적이지만 심리적으로 당연히 다가올 미래를 유보함으로써 우리는 행복과 쾌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게 본능적 시간 퇴행의 작동 매커니즘이다.


낮에는 갑자기 김민종의 노래가 생각났다. 1998년 내가 거의 처음으로 음악과 분위기에 빠져들었던 뮤비, 착한 사랑이라는 곡이었다. 유튜브에서 이 곡을 듣고, 김민종의 다른 인기곡을 감상했고, 그 다음엔 1998년 무렵의 가요톱텐 1위 곡을 찾아서 듣기 시작했다. 할 일이 있었는데도 이렇게 충동적이고 불가항력적인 행동의 기원엔 본능적 시간 퇴행이 자리 잡은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