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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킹>에 실린 베토벤 교향곡 7번 2악장





 베토벤 교향곡 7번 2악장은 조지 6세의 말더듬이 극복 과정을 그린 <킹스 스피치>에서 등장합니다. 조지 6세가 세계2차대전 참전에 대해 국민들에게 비장한 각오와 결단을 알리는 장면에서 사용됩니다. 심오해지는 곡의 흐름과 한 단어 한 단어 꾹꾹 눌러 읽어나가는 조지 6세의 모습은 이 영화의 명장면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킹스 스피치> 뿐만 아니라 교향곡 7번 2악장은 특유의 절박한 분위기와 긴장감이 고조되는 특징 때문에 <엑스맨:아포칼립스>, <노잉> 등 많은 영화에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베토벤 교향곡 7번은 많은 베토벤 애호가들이 최고로 뽑는 곡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9번 합창이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나 영화 <카핑 베토벤>에서도 소개가 되며 대중에게 가장 잘 알려지고 인기가 많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그 다음 순위엔 아마 7번이 위치하지 않을까요.

같은 곡이 2017년 화제작 <더 킹>에서도 사용되었습니다. '킹'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두 영화에 나와버리니 왕과 부쩍 친한 음악이 되어버린 느낌입니다. 이 곡은 극 중 박태수가 좌천되어 나락으로 떨어지고, 새롭게 마음을 가다잡게 되는 장면에서 사용됩니다. 감독이 확실히 심혈을 기울인 장면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미장셴이 준수하고 극에서의 역할도 꽤 컸다고 생각이 드는 부분이었습니다.
단순히 비장한 순간에 이 곡을 사용했다고 봐도 됩니다. 그러나 이 음악을 뜯어보고 싶습니다.






교향곡 7번 2악장에서 사용된 큼직한 작곡법은 ‘대위법’입니다. 대위법은 독립성이 강한 둘 이상의 멜로디를 동시에 결합하는 작곡 기법을 말합니다. 주 멜로디라인과 보조 멜로디로 구분되는 측면으로 본다면 일반적인 다성 음악과 유사합니다. 그러나 조금은 약간 다릅니다. 대위법에선 주와 보조를 나눈다기보다 수평적 멜로디 라인 2개가 존재한다고 봐야 합니다. 두 멜로디 각자의 개성과 독립성이 유지된 채 곡은 진행됩니다. 물론 어떤 부분에서는 두 멜로디간의 화음이 일어납니다. 또, 다른 부분에서는 불협화음도 역시 일어납니다. 이렇게 화음과 불협화음이라는 긴장과 이완을 번갈아 반복되며 대비와 조화를 둘 다 꾀하는 게 대위법의 효용입니다.
2악장에서 저음 멜로디는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가 담당하고, 고음부는 바이올린이 담당합니다. 두 멜로디 각자 자신의 노선을 잘 유지하는 동시에 곡의 고조에 고삐를 늦추지 않습니다. 쫄깃한 묘미를 즐기다보면 금관과 목관까지 합류하며 음악은 더 웅장해지고 양감은 거대해집니다. 대위법은 이런 식으로 교향곡 7번을 수백 년 동안 전세계 사람들에게 사랑 받을 수밖에 없는 음악으로 만들었습니다.

초반엔 <더 킹>에서 이야기하는 대한민국의 왕은 바로 검찰 조직에서 부당한 권력을 잡고 하고 싶은 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검사였습니다. 그러나 극의 마지막에선 대한민국의 왕은 영화를 지켜보는 관객, 즉 시민이며 권력을 사유화한 부정한 왕의 출현을 막는 유일한 방법은 시민의 정치 참여라고 당부합니다.

대의민주주의, 법치주의의 가치 아래 우리나라가 정의롭고 살기 좋은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정부, 의회을 포함한 모든 헌법기관의 모든 공직자의 청렴과 도덕과 원칙위주의 업무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것들이 올바르게 지켜진 적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나라가 더 좋은 나라가 되기 위해선 대위법이 그러했듯 교향곡 7번 2악장처럼 독립적이지만 긴장과 이완을 이끌어내는 반대축이 필요합니다. 그 역할을 해줄 사람은 바로 국민입니다. 국민이 더 뜨겁게 권력기관의 잘못엔 무섭게 불협화음을 내고, 좋은 정책엔 최선을 다해 화음을 낸다면 우리나라도 살기 좋은 나라가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