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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리뷰] 도재명 <토성의 영향 아래>




 2015년 가장 충격적인 일 중 하나는 로로스의 잠정적 활동 중단이었다. 그 해 한국대중음악상의 주인공이 된 밴드였고, 한국 포스트록의 아이콘으로 우뚝 섰던 그들이기에 몇 년간은 승승장구하리라 쉽사리 기대할 수밖에 없었던 바로 그때 활동 중단 선언이 있었다. 6인조 밴드에 걸린 기대는 거대했고, 그 기대의 높이만큼 팬들의 추락한 기대감에 아쉬움과 실망도 컸다. 그 아쉬움이 사그라들기 전에 발표된 도재명의 솔로 앨범 소식은 그래서 반가웠다. 걸그룹의 신곡 티저 영상만큼 도재명의 티저 역시 반가웠다. 많은 사람들이 출시일까지 손꼽아 기다렸던 앨범이었다.

나도 모르게 도재명 솔로 앨범이긴 하지만 로로스 2집 <W.A.N.D.Y> 앨범의 연장선 위에 있는 곡들을 기대했었나보다. <토성의 영향 아래>에 담긴 13곡은 그래서 조금 실망스럽다. 곡마다 밴드 사운드같은 양감은 줄어들었고, 통일성보다 트랙의 개별적 개성이 더 돋보인다. 피아노 연주곡 'Sonate De Saturne'으로 앨범은 문을 활짝 열고 바로 이어지는 타이틀곡이자 앨범명과 동명인 2번 트랙은 규칙적인 피아노와 드럼을 배경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내레이션을 읊조린다. 로로스는 포스트록의 틀 안팎으로 종종 넘나들었던 역사를 가졌다. 그러나 타이틀 곡에서 도재명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는 음악의 경계를 넘나드는 곡을 선뵀다. 음반 출시를 가장하고 시를 읽어주는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한국식 '스포큰 워드(Spoken Word)'를 시도했는지도 모르겠다. 매우 단조롭지만 그런 까닭에 이자람의 유일한 노래 멜로디가 돋보이며 여운이 강한 곡이다.

'미완의 곡'은 피아노만으로 파도 소리를 묘사하며 도재명 주변의 죽음들, 특히 세월호의 슬픔을 묘사했다. 생애에 이루지 못한 꿈과 이야기를 대변한 미완이다. 'Pas de duex(빠드되)'는 두 사람이 추는 발레를 말한다. 첼로와 바이올린이 불협화음을 이루며 퍼커션과 전자기타도 덧붙여지는 독특한 화음을 선보여준다. 진중함과 우아함을 양대산맥으로 하는 대위법으로 쓰여진 다소 전위적 성격을 가졌다. 각 곡에는 이처럼 도재명이 음악의 선율과 밸런스만큼 함유된 의미와 메시지가 가득하다. 그래서 도재명이 써내려간 음악이라기보다 도재명의 철학책, 어쩌면 단편집 같은 기분이 들 정도다.

도재명의 혼자만의 시작은 거창하지 않다. 이는 당연스럽게도 다음 음악 행보에 기대감을 담보하지도 않는다. 음악가로써 하나의 징검다리를 놓았다고 설명하기도 애매하다. 다음 음악 활동에 있어서 징검다리가 되기보다 허드슨 강(앨범 커버는 허드슨강을 찍은 사진이다) 가운데 던져놓은 큰 바위가 생각나는 앨범이다. 물론 디스코그래피에 어떤 장르적 연속성이 있어야만 항상 좋은 아티스트라고 할 수 없다. <토성의 영향 아래>는 매우 독립적인 앨범이다. 도재명 다운 음악에 대한 답은 내릴 수 없지만, 도재명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지에는 충분히 답을 내릴 수 있는 앨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