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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지드래곤 USB 앨범은 음반일까, 아닐까?



 지드래곤이 새로운 EP'권지용'을 출시했습니다. 음악이 이렇고 저렇고 좋고 별로다를 떠나서 지드래곤의 앨범은 화제가 되어버렸습니다.

  1. 사건의 발단?
문제의 시작은 지드래곤이 SNS에 "What's The Problem?"이라는 글로 불만을 쏟아낸 것으로 시작됩니다. 이 메시지는 한국음악콘텐츠산업협회로 향했습니다. 음콘협이 이번에 출시한 지드래곤의 USB앨범이 음반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그 이유는 물론 법에 근거합니다. 저작권법 제2조 5항에 정확하게 명시되어 있습니다. 
"음반"은 음(음성ㆍ음향을 말한다. 이하 같다)이 유형물에 고정된 것(음을 디지털화한 것을 포함한다)을 말한다. 다만, 음이 영상과 함께 고정된 것을 제외한다. 
USB라는 매체는 문제가 안 됩니다. 이미 많은 국내외에서 USB를 통해 음반이 발매되었습니다. 그러나 음원이 담겨있지 않다는 점이 관건이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지드래곤의 USB 안에 음악은 없습니다. 대신 음원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링크 URL 파일 하나만 있습니다. 구입한 사람은 이 인터넷이 가능한 피시를 통해 페이지에 접속하고 동봉된 시리얼넘버를 입력해 음원을 다운로드할 권리만을 구입한 셈입니다. 음원 탑재 유무에 있어 저작권법에 위배되기 때문에 음콘협은 지드래곤을 음반에서 제외됐고, 지드래곤은 이런 처우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를 낸 것입니다. 음반으로 규정되지 않으면 음반을 기반으로 점수를 내는 음악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드래곤의 불만은 신곡의 순위에도 민감한 팬들의 불만으로 이어져 여기저기서 논쟁이 생겨났습니다.
분명 아쉬운 점은 있습니다. 정규 앨범도 아닌 미니 앨범임에도 너무 비싼 3만원이라는 정가. 그리고 컴퓨터와 인터넷에 친하지 않아 USB 앨범을 통해 혼란스러울 사람들을 위한 다른 선택권을 주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또 USB 메모리 완성도가 생각보다 조악하는 점 역시 빼놓을 수가 없겠네요.

  1. 허튼소리는 아니다.
지드래곤의 불만은 법을 어긋나는 점에도 불구하고 마냥 허튼소리에 그치는 건 아닙니다. 지드래곤의 앨범을 구입하는 사람들의 의식을 보면 됩니다. 이들은 USB임에도 불구하고 지드래곤의 굿즈를 구입한다기보다, 지드래곤의 새 음반을 구입한다는 걸 분명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음원이 담겨있고 없고를 떠나, 게다가 곡이 USB에 직접적으로 탑재됐냐의 여부에 불만을 가지든 말고를 떠나, 음반을 구입한다는 생각으로 지갑에서 돈을 꺼낸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법이 이렇다 저렇다를 떠나 아티스트가 발매한 음반을 정식으로 구입한 소비자라는 점입니다. 구입한 사람은 음반으로 샀는데, 법이 음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누가 다치거나 손해를 보는 것도 아닌데도 말이죠.

  1. 음반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옳고, 음반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옳다.
이 주장은 일견 궤변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둘 다 올바른 가치에 기반한 타당한 말이라 생각합니다. 먼저 이야기할 것은 현재 음악 시장이 과도기적 상황이라는 점입니다. 4차 산업혁명의 파도도 일환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음악 시장은 전통적인 콤팩트디스트(CD) 판매와 온라인 디지털 음원 판매로 양분되고 있습니다. 전자는 이제 사장되는 시장이고 후자는 유력하고 앞으로 쭉 지배적인 시장입니다. 우리는 그 둘을 분리해서 부릅니다. 하나는 음반, 다른 하나는 음원으로요. 그리고 문체부가 공인한 가온차트 역시 이 둘을 분리하고 있습니다. 가온차트는 한 음악에 대해 음반과 음원을 따로 점수내 인기의 척도로 세웁니다. 둘은 음악을 구입하고 소비하는 본질적인 차원에선 다를 바가 없는데도 우리는 둘을 개별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지드래곤의 USB가 음악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분들은 바로 전통적 음반에 대한 가치관이 더 뚜렷한 편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전통적 음반은 무엇보다 '실물'과 '현장성'이 중요한 척도입니다. 이 분들은 프린트, 가사집, 사진, 기념품 등이 담긴 음반을 구입하고 책장에 꽂아놓는 맛이 있어야 합니다. 또 재생기기를 통해 즉시 그 자리에서 재생할 수 있는게 당연하고 익숙한 분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분들에게 지드래곤의 USB에는 바로 들을 수 있는 음악이 없어 허무하고, 유의미한 소장품으로써의 가치도 없어 무의미한 것입니다. 결국 음반으로 지위를 얻는 데 실격사유가 치명적인 것입니다.
반대로 지드래곤의 USB를 앨범이 될 수도 있다고 보는 분들은 새로운 매체에 대한 열린 태도 때문입니다. 이들은 음반을 구입하는 행위를 통해 (따로 다운로드를 받아야함에도 불구하고) 음악에 대한 접근 권한이 주어진다는 점, 또한 아티스트를 물질적으로 서포팅한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지드래곤의 USB 앨범이 그 역할을 충분히 다 해내기 때문에 기존 음반과 USB가 다르다고 볼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들은 논쟁이 되는 이 사안을 두고 지드래곤의 스웩이 담긴 낯선 시도에 대해서 후한 점수를 주기도 합니다.


  1. 게임 산업은 진작 이런 변화를 겪었습니다.
20년 전만 해도 게임을 구입한다는 것은 멋스러운 박스세트와 게임을 실행하는 시디롬 하나, 컨셉트 아트웍 책자, 기타 굿즈를 한꺼번에 구입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20년 전 게임팬이 지금 게임 구입 행태를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요. 요즘 게임 구입은 온라인을 통해 이뤄집니다. 온라인으로 결제를 하면 즉시 다운로드가 가능하고 바로 실행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스팀, 블리자드 등 메이저 게임 회사는 이런 식으로 게임을 배포/유통합니다. 소비자에게도 이런 구매행태가 당연한 것으로 자리잡았습니다. 20년 전 게임팬이 이런 광경을 보면 '그럼 책꽂이에는 무엇을 꽂아놓냐!'라고 생각하겠지요.
최근 출시한 철권7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실물 패키지 박스 안에 담긴 건 인증 시리얼이 적힌 종이 한 장이 전부입니다. 실물로써의 게임 구매가 큰 의미를 잃었다는 상징입니다. 게임계에선 과거 실물 소장을 누리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서 따로 스페셜 에디션이나 한정판 패키지를 내놓을 뿐입니다.
지드래곤의 USB로 인한 음반 논쟁은 게임 산업이 이미 밟아온 길을 답습한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변화화 행태에 대한 당연한 거부감과 의구심 때문입니다.

http://bbs.ruliweb.com/hobby/board/300112/read/30568506?cate=239http://bbs.ruliweb.com/hobby/board/300112/read/30568506?cate=239




  1. 지드래곤이 화두를 던졌다.
결국 음반에 대한 규정과 이를 둘러싼 사람들의 인식에 지각변동을 부르짖는 첫 삽을 지드래곤이 해냈습니다. (그 의도가 철저하게 의도적인 것인지 여부는 알 수 없겠지만) 어쨌든 지드래곤은 새로운 포맷과 방식을 포용하지 못하는 오래된 저작권법에 대한 일갈을 한 셈입니다. 덕분에 여러 커뮤니티와 스트리밍 사이트 댓글에서도 팬들 사이에서 큰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이게 어떻게 음반이냐" "이게 음반이 아니면 뭐냐" 서로 타당한 이야기만 나오고 있습니다. 음콘협은 물론 문체부 역시 이 사건을 주목할 것이고 앞으로 그 파장에 대한 실질적 변화가 이어질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사건을 떠나서 음반을 넘어 음악 시장의 유통과 구조에 대해서 제도적, 의식적 변화가 있을 필요는 있습니다. 앞으로 아티스트들이 음악을 공개하는 방식은 더 다원화되고 독특하게 변모할 것입니다. 근미래에 있을 다양한 양태의 음반을 규정하는 데 지금의 법과 공적 규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동시에 온라인 음원과 음반을 어떻게 절충해서 인기의 척도를 정할지도 다시 생각해봐야 할 때입니다.

4차 산업혁명, 자율 자동차, 인공지능, 드론 등 다양한 신생 산업 분야에서 중요한 것은 국가와 제도가 잘 발 맞추냐의 여부입니다. 우월한 기술력과 실력에도 불구하고 구시대 제도가 발목을 잡고 한계를 씌우는 것만큼 안타까운 일이 없습니다. 음악 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변화에 유기적으로 발맞추는 제도와 인식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