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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한국힙합은 쇼미더머니로 벌 것인가, 버릴 것인가




쇼미더머니의 목적
모든 프로그램이 그렇듯 엠넷 역시 목적을 정해놓고 쇼미더머니를 기획하진 않는다. 엠넷측은 그저 시청자를 모으고 광고주를 모으면 만족할 일이다. 그러니까 엠넷이 설렁 힙합의 부흥과 발전을 위해 쇼미더머니를 기획했다고 말한지언정 이건 명분에 불과하다. 한국힙합씬은 스스로 쇼미더머니를 통해 얻을 콩고물을 계산해봐야 한다. 수익을 볼모로 힙합씬을 엠넷에서 맞겼다면 분명히 얻어가야 하는 수익이 있어야 좋은 거래니까 말이다. 힙합쪽에서만 money를 보여주면 불공평하다.

쇼미더머니가 힙합씬의 모든 아티스트가 계급장 떼고 붙어볼 수 있는 FA컵이나 오픈십으로 기능하는 것인가? 아니면 기존 인기나 디스코그래피가 굵직할 수록 유리한 마치 MMORPG세계의 PK판인가.
굵직한 아티스트들이 1~2차 예선에서 자신이 기존 곡을 통해 보여준 비트와 벌스를 통해 수월하게 통과했다. 넉살, 영비, 피타임, 디기리 등 대부분의 래퍼가 자기 가사를 재활용했다. 공개되지 않은 아이템도 아닌 이미 검증된 무기를 가져와 부딪치는 걸 보면 공평무사한 게임은 아니다. 신춘문예에서 다른 신춘문예에 냈었던 작품을 다시 제출할 수 없는 조건의 존재이유가 분명 있을 텐데 말이다. 이미 있는 가사를 또 가져나올 곳은 개인 콘서트장이다. 쇼미더머니는 자기 곡을 듣고 싶은 사람만이 앉아있는 개인 콘서트장이 아니다.
3차 예선에서 1vs1 대결이나 음원 미션에 들어가면 또 이야기가 달라진다. 양 래퍼가 비등비등하게 잘 했다고 판단될 시에 판정하는 프로듀서들은 신기한 논리를 공통적으로 사용한다. "비슷한 무대를 보여줬다면 기회가 없었던 신예 래퍼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 그렇게 페노페코는 에이솔과의 대결에서 훌륭한 무대를 보여줘놓고도 패했다. 더블케이도 비스무리한 상황에서 다음 라운드에서의 가능성을 보여줄 기대에도 불구하고 탈락했다.
쇼미더머니는 신예나 베테랑 어느 누구에게도 유리한 무대가 아니다. 일견 공평한 말처럼 들리지만, 래퍼들이 계급장 떼고 싸우는 전장도 아니고, 계급장이 어쩔 땐 목숨을 앗아가기도 한 아이러니한 무대라는 이야기다. 차라리 경력자나 신예 둘 중 한쪽에 더 큰 호의가 보장되는 대회라면 쇼미더머니의 색깔과 목적은 분명해질 텐데 말이다.


유교 힙합
모든 힙합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개 대중은 힙합에서 반항, 디스, 신랄함같은 특색을 기대할 수 있다. 그것들은 힙합이 음악을 넘어 패션, 문화로 자리매김하는 데 큰 역할을 해내기도 했다. 쇼미더머니를 통해서 시청자가 만날 수 있는 포인트 중 그것들도 핵심 포인트다. 그러나 그런 다소 노골적인 힙합의 묘미는 찾아볼 수 없다.
프로듀서의 독재적 평가 시스템 때문에 출연자들은 시종일관 머리를 조아린다. 프로듀서의 무대나 그들이 손수 제작한 비트를 처음 듣고 그저 찬양일색이다. 다른 참가자에 대한 속마음을 아무데서나 말하다 찍힐까 두려워 참가자들은 밀실 카메라 인터뷰에서 하고픈 말 쏟아낸다. 이렇게 악마의 편집의 재료를 쏟아내고 악마의 편집의 구실을 제공할 뿐이다. 마치 폐쇄적 유교를 차용해와 래퍼의 본능을 자가거세하고 있는 판국이다. 경쟁자들의 탈락에서 여기저기에서 '리스펙트'라는 말이 들린다. 그러나 이조차 속없는 리스펙트로 들린다. 다음 다운드로 올라가고 싶은 욕망만이 유일한 팩트같다. 현실과 흡사하게 갑과 을이 교묘하게 나눠지고 부정적 평가에 대한 발설은 누구나 조심스럽다. 스웨그는 오직 무대 위에서만 허락된다. 무대 아래서 행해지는 여러 양태의 스웨그는 건방짐, 예의 없음으로 낙인 찍혀 다음 판정에 영향을 준다. 쇼미더머니에서 힙합의 노골적이고 강한 색깔은 죄다 탈색되어버렸다. 논란과 화제를 동시에 몰고 다녀 힙합씬에 대한 새로운 조명과 이해가 가능했던 2013년 컨트롤 디스 때의 그런 모습은 전연 찾아볼 수 없다. 그냥 일반 기업 공채에서 지원자들이 서로 경쟁하는 모습 딱 그정도다. 여느 공채가 예의, 인맥, 후광효과 같은 실력 외적인 요소 때문에 완전히 공평할 수 없듯 쇼미더머니 결과도 항상 시끄럽다. 

프로듀스101은 민주주의, 쇼미더머니 프로듀서는 독재
출연자만큼 비중있는 주인공이 있다. 심판의 역할을 하는 프로듀서다. 프로듀스101처럼 시청자들이 프로듀서가 되지 않고 그들이 독재에 가까운 전권을 가진다. 큰 권한을 손에 쥐고 음악적 멘토의 역할을 하는 이들에게 출연자는 물론 시청자들도 자연스럽게 자격에 대해서 논할 수밖에 없다. 이 프로듀서들은 수많은 실력자들을 가늠하고 평가하고 이끌 능력자가 되는가?
음악 아티스트에게 능력치를 여럿으로 간략하게 나눠보자. 이들에게 자격을 부여할 수 있는 건 (현재의) 인기, 풍부한 경험, 음악적 업적(성과), 프로듀싱 능력 등이다. 그리고 음악에서 프로듀서가 하는 일을 본다면 꼭 랩을 잘 해야 하는 사람이 아니어도 된다. 래퍼의 능력과 스타일을 재빠르게 파악하고 어울리는 비트를 붙여주고 어울리게 편곡해 좋은 곡을 뽑아내면 충분하다. 프로듀서가 꼭 랩을 잘해야 되는 건 아니다. 선수경험 거의 없는 무리뉴와 경험이 아예 없는 빌라스 보야스가 축구 감독을 하는 것처럼.
그러나 항상 시즌마다 프로듀서 자격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시청자들이 모두 한가지씩 납득할 수 없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재범, 지코, 딘, 지누션. 결코 이들이 힙합 아티스트로 모자르다 평가절하하는 게 아니다. 가장 실력있고 트렌디한 힙합이 등장하는 곳이 쇼미더머니도, 가장 무게감 있고 뜨거운 경연의 장이기 때문에 시청자는 조금이라도 부족한 커리어를 가졌거나 검증되지 않은 능력을 가진 프로듀서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물론 프로듀서 선정에 있어서 모두를 만족시킬 기준은 없다. 그러나 시즌마다 한가지 기준을 세워 프로듀서를 세운다면 아예 없던 설득력을 확보할 수 있다. 한 시즌은 음원 1위를 5번 이상 해본 이들만 프로듀서로 모셔온다거나, 다른 시즌은 무대 경험이 500회 이상 경험자들을, 또 다른 시즌은 자체 앙케이트트를 진행해 참가자들이 뽑은 존경하는 래퍼 TOP 10에 든 프로듀서처럼 말이다.
결국 쇼미더머니가 잦은 논란과 구설수에 오르는 대부분의 이유는 프로듀서고, 그 시작은 프로듀서 선정 과정에서 납득 불가능성이다.


한국힙합에서 쇼미더머니란
쇼미더머니가 한국힙합씬에 얼마만큼의 지분을 가지고 있을까. 참가 여부를 떠나 모든 힙합 아티스트가 관심을 기울이는 모습, 논란과 화제가 항상 줄을 잇고 힙합 커뮤니티들도 뒤흔드는 모습을 보면 한국 힙합의 절반 이상의 지분을 가졌다고 감히 추측할 수 있다. 좋든 나쁘든 쇼미더머니는 한국힙합씬의 대주주다. 어쩌면 경영권을 쥐고 합국힙합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신예는 쇼미더머니를 통해서 유명해질 수 있고, 잊혀진 래퍼의 재도약도 쇼미더머니에서만 가능하다. 언프리티랩스타, 고등래퍼 같은 쇼미더머니 파생 프로그램도 자꾸 만들어지는 것도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다.
6번째 시즌을 진행하는 동안 쇼미더머니는 힙합의 양적 성장에는 분명히 기여했다. 힙합 음원이 많이 팔렸고, 다채로운 래퍼들이 시청자들을 만났다. 그러나 이제 하나의 프로그램이 힙합씬에 기여할 수 있는 한계치에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장르, 하나의 문화가 하나의 프로그램에 종속되는 것은 반대로 말해서 그 하나의 장르, 문화가 그만큼 협소함을 반증한다. 힙합은 하나의 프로그램에 의존해야 하는 얕은 분야가 아님을 한국힙합씬이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이제 힙합은 쇼미더머니의 지분을 스스로 줄여나가야 한다. 힙합씬에서도 적극적으로 쇼미더머니에 대한 자가평가와 역할을 부여해야 한다. 아예 신예 래퍼 발굴을 위한 기회의 장으로 여기는 건 어떨까. 이미 여러 앨범을 냈다거나 이미 시청자들에게 잘 알려진 래퍼는 스스로 출연을 거부하는 것이다. 착한 보이콧이 필요하다. 메인스트림으로 가는 자그마한 길이 바로 쇼미더머니다. 일단 메인스트림에 오른 이들은 또다른 길을 개척해야 한다. 어느 곳이다 하나의 길은 망하는 길이다. 쇼미더머니가 힙합의 상징이라면 힙합은 망할 징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