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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송민호, 차라투스트라 그리고 프레디 머큐리




'신서유기'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게임은 출연자가 즉석에서 사진이나 그림을 보고 문제를 푸는 인물, 캐릭터 퀴즈다. 이 퀴즈가 인기를 끌면서 나영석 피디는 같은 방식으로 속담, 책 이름 맞추기까지 동원했다. 책 이름 앞부분을 나 피디가 말해주면 바로 책 이름 뒷부분을 출연자들이 외쳐야 한다. 송민호가 풀어야 했던 문제 중 "차라투스트라는..."가 있었다. 송민호는 아무 대답을 하지 못했고 "짜라투스트라가 누구예요?"라며 소리를 질렀다.


정답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Also sprach Zarathustra)'였다. 부제는 '모두를 위하거나,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Ein Buch für Alle und Keinen)'이다. 독일 근대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쓴 책이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제목이다.


이 책이 잘 알려질 수 없는 여러 가지 특징 중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은 책이 너무 어렵다는 점이다. 이해하기 어렵기로 유명한 니체 서적 중에서도 가장 난해한 책으로 꼽힌다. 니체가 다양한 이야기로 자기의 복잡한 정체성을 풀어 쓴 스웩 가득한 책이다. 책 이름대로 차라투스트라가 무슨 말을 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니체 본인이 무슨 말을 하려는 했는지를 알아내는 게 이 책을 읽는 묘미다. 지금은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에 가깝다. 이건 니체도 반박불가. 니체 ㅇㅈ? ㅇㅇㅈ.


그렇다면 차라투스트라, 그는 누구일까.


차라투스트라는 영어 표기로 조로아스터(Zoroaster)다. 그러니까 조로아스터교 창시자, 그 사람이 맞다. 조로아스터교는 BC 6~7세기 먼 과거 중동과 중앙아시아 일대 고대 토착 종교였다. 아후라 마즈다라는 유일신을 믿으며 불을 숭상한다는 의미에서 배화교로 불린다.




지금에 와서 조로아스터교는 사라져가는 종교에 가깝다. 건조한 지역이 아닌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는 데 한계가 있었고 현대인들에게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기 때문. 그렇게 차츰 신도를 잃고 성지와 성서들도 시간의 굴레 속에서 닳아 없어져 가고 있다.


조로아스터교를 믿는 유명인은 있을까. 사람들이 알 만한 사람으로는 전 세계에 딱 한 명 있다.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알 수 있듯 머큐리는 탄자니아령 잔지바르섬 출신이다. 그의 인종, 문화, 국적으로 묘사해보자면, 페르시아쪽 혈통을 지닌 인도계 영국인이다. 가족은 여러 곳을 이주하면서도 가문이 전통적으로 믿어온 조로아스터교를 신봉했다.


머큐리의 아버지는 굳건한 조로아스터교 신자였다. 아들이 이름까지 버리고 전통과 종교에 반하는 행동을 보이면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아들이 죽은 후에는 조로아스터교 전통 장례 방식인 조장(송장을 야생 조류들에게 먹이는 장례 방식)을 주장하기도 했다.


머큐리의 아버지가 영화에서 유독 반복했던 말이 있다. 관객들 머릿속에 각인되기 쉬웠던 대사였기도 하다.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행동을 해라" 이 말 역시 조로아스터교 교리에 맞닿아 있다. 머큐리에게 시종일관 잔소리에 불과했던 이 대사는 머큐리가 라이브 에이드 무대에 오르는 것을 다짐하면서 긍정적인 문장으로 탈바꿈했다. 이 말은 아버지와의 유대감이었고, 가문에 대한 존중이었다. 영화는 머큐리가 끝내 이 말을 실천해내는 것에 적지 않은 의미를 부여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자. 송민호가 궁금해했던 차라투스트라는 도대체 무슨 말을 했던 걸까. 니체가 시도했던 은유를 제하면 차라투스트라는 딱 이 말을 했다고 봐도 좋다.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행동을 해라." 프레디 머큐리가 지키고 싶었던 그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