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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고맙습니다. 스티븐 제라드

경기 전 앤필드에서의 마지막 터치.


 


















마지막 홈경기에서 신은 제라드 축구화에 새겨진 글씨


경기 전 앤필드에서의 마지막 터치.


훌쩍 커버린 세 딸과 함께


CAPTAIN이라는 글자를 그를 가장 잘 대변하는 글씨입니다.



유럽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대회의 결승전, 내로라하는 세계 스타급 선수들로 이뤄진 상대팀에게 전반에만 3골을 먹힌 다음 후반을 기다리는 팀의 주장이면 어떤 기분일까요? 객관적인 전력으로도 상대에 비해서 한참 부족하고 평을 받는 팀을 이끌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스티븐 제라드는 이런 상황에서 팀원의 실낱같은 사기를 극대화시켰고, 마치 머리에 문제가 생겨서 3골을 먹었다는 걸 잊은 것처럼 도전해서 끝내 3:3의 스코어를 만들어냈습니다. 3류 영화의 시나리오도 이렇게 말도 안 되게 유치한 줄거리를 쓰지 않는 마당에 스티븐 제라드는 이런 시나리오를 현실에서 써냈습니다. 이 모습이 제라드가  저에게 준 첫기억입니다. 그렇게 그와 그의 팀을 응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아이콘이었습니다. 그와 그의 팀은 명실상부하게 항상 세계 최고는 아니었지만, 그는 세계 최고를 위해 노력하는 정신, 끝날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굳은 마음을 보여줬습니다.

팀이 재정적으로 어렵고, 분위기가 뒤숭숭해도 큰 돈을 준다던 타 팀의 유혹을 떨쳐버리고 18년동안 한 팀에서 뛰었습니다. 

감독과 팀을 위해서 중간에서 팀원과 감독의 불화를 수 없이 중재했습니다. 적응 못하는 선수를 편하게 해줬고, 고민있는 동료들에게 신중한 조언을 해줬습니다.

자신의 팀을 그저 발판 삼아 더 큰 도전을 위해 떠나간 팀원의 뒷모습에도 그는 팬들처럼 원망을 던지지 않고 항상 그들에게 응원의 목소리를 보여줬습니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데 인색하지 않았고, 남의 잘못을 쉽게 힐난하지 않았습니다.

폭발적인 공격형 미드필더에서, 월드컵에선 팀의 부족했던 윙어 포지션에서 희생하고, 팀에서는 자신의 롤을 감독의 의도대로 맞추며 수비형 미드필더까지 수행하는 희생과 노력을 보여줬습니다.


그런 그가 이제 팀을 떠나갑니다. 2005년 이스탄불의 기적으로 팬이 되어버린 저는 딱 10년만에 떠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어쩌면 아직은 그가 떠나간다는 점에서 무덤덤한 편일 수도 있습니다. 

매주 주말밤 방구석에서 중앙 미드필드 지역에서 뛰어온 모습을 봐왔습니다. 재수 공부하면서 괴로운 시절에서도 그의 모습은 봤었고, 사랑에 슬퍼하면서도 그의 중거리슛을 봤었고, 시험 기간 해야할 공부가 산더미 같았어도 시선의 곁에는 그가 항상 뛰고 있었고, 새벽 3시 경기를 위해 머리맡에 핸드폰을 켜놓고 기다렸습니다.

앞으로 주말에 빨간 옷을 입고 있는 그의 모습을 못본다는 것, 그게 저에게 정확히 어떤 의미가 될지 아직 모르겠습니다...



제라드가 'You'll Never Walk Alone'이 항상 주었던 희망의 메시지, 그리고 항상 누군가 함께 한다는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새로운 곳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랍니다. 


YNW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