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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슈트라우스(R.Strauss), 가곡 Allerseelen(위령제)와 내 이야기

 








 듣고 싶은 교양이 너무 많아 한참을 고민하면서 수강신청에 임할 정도로 대학 분위기에 심취했었을 때, 음악에 대한 수업은 항상 과학 교양과 함께 나의 1순위였다. 가령, '재즈의 역사'나 '고전음악의 이해' 정도는 꼭 들어야만 했던 과목이었다. 이와 더불어 가장 내가 평소에 즐겨 듣진 못했던 가곡과 관련된 수업을 하나 수강한 일이 있었다. 새로운 음악 장르에의 한걸음이였고, 첫수업을 큰 기대와 함께 출석했던 기억이 있다.


허나 수업은 그렇게 썩 좋진 않았다. 독문과 소속이셨던 선생님이 얼마나 가곡을 사랑하시는지 느껴지긴 했지만, 그 사랑을 학생들에게 이해시켜주기보다 강요하는 느낌이 더 강했기 때문에 시종일관 유쾌한 수업은 아니었다. 선생님의 감성적이시고 부드러운 성격덕에 강의실은 종종 어둑하고 차분한 음악 감상실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많은 학생들이 엎드려 자는 광경은 항상 펼쳐졌다.


그렇다고 마냥 메마른 수업은 아니었다. 들려주신 가곡들은 굉장히 아름다웠고, 중간/기말시험을 준비하면서 나 스스로 찾아듣는 가곡들은 괴로운 시험기간 와중에 날 위로해주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여러 곡 중 유난히 나를 가장 감동시킨 건 R.슈트라우스의 '위령제(만령절)'였다.


우리가 아는 슈트라우스의 대표곡들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필두로 보통 교향시다. 슈트라우스라는 이름에서 풍기는 음악 향기는 중고등학교 음악실에서 질펀한 자세로 들었던 곡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내 귀를 사로 잡는 가곡의 작곡가가 슈트라우스였던 사실은 조금 놀랍기도 했다.

이 곡은 Hermann von Gilm이 쓴 시에 슈트라우스가 1883년에 곡을 붙인 것이다. (보통 독일 가곡은 이미 있던 시에 피아노 가락만 작곡해 붙인다. 리트[Lied]는 이렇게 만들어진다다. 이상 설명충.)


노래는 옛 애인이 만령절에 죽은 이의 무덤을 찾아와 과거를 추억하고 그이를 그리워하는 내용을 담았다. 시는 가슴을 울리고 가락은 매우 아름답고 서정적이다. 초연하게 남은 생자(生者)와 말없는 사자(死者) 사이의 거리가 하염없이 멀게 느껴지는 동시에 마치 해후한 것 같은 감격스러움도 느껴져 구슬프기도 하다. 만령절의 분위기를 잘 포착했다.


5월은 내 생일이 있고, 가장 날이 좋은 달이기도 하고, 내 유니폼 등번호에 담기기도 했고, 내가 많이 사용하는 아이디에서 숨어있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달이다. 이 가곡 안에도 행복했던 시절을 5월이란 시간 속에 녹여냈다. 그래서 더 정감이 가는 곡이다.

 

나는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언젠가 죽었을 때, 돌아오는 기일마다 이 노래를 가족, 친구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들으면서 나를 추억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말이다. 




가사는 아래와 같습니다.


Stell auf den Tisch die duftenden Reseden, 

탁자위에 향긋한 레세다를 갖다놓고


Die letzten roten Astern trag herbei

그리고 우리 다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자


Und lass uns wieder von der Liebe reden,

최근에 핀 붉은 과꽃을 여기에 갖다놓고


Wie einst im Mai.

마치 예전의 오월처럼


Gib mir die Hand, dass ich sie heimlich drücke,

내게 손을 달라, 내가 그것을 은밀히 잡을 수 있도록


Und wenn mans sieht, mir ist es einerlei:

그리고 사람들이 보아도, 나는 개의치 않는다


Gib mir nur einen deiner süssen Blicke,

나에게 단지 너의 달콤한 눈길을 달라


Wie einst im Mai.

마치 예전의 오월처럼



Es blüht und funkelt heut auf jedem Grabe,

모든 무덤에 오늘은 꽃이 피고 향기롭다


Ein Tag im Jahr ist ja den Toten frei;

일년중 하루는 죽은 사람도 자유롭다


Komm an mein Herz, dass ich dich wieder habe,

나의 가슴으로 오라, 내가 너를 다시 안을 수 있도록


Wie einst im Mai.

마치 예전의 오월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