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 상상력을 상상하다

 




0. 기대감을 가지고 후다닥 극장.


개봉 전부터 해외에서 후끈후끈해서 한껏 기대감이 고조되었다가 개봉하고 처음 맞는 주말에 영화관을 달려갔습니다. 가장 걱정한 건 '드래곤 길들이기'를 극장에서 보면서 겪은 어린이들의 비명과 수다들이었습니다. 인사이드 아웃도 껍데기는 애니메이션이니까 감상에 크게 방해되는 건 아닌가하는 걱정이 가장 먼저 앞섰습니다. 하지만 함께 영화를 즐겨본 수많은 초등학교 저학년 친구들은 몰입을 잘 했던 까닭인지 같이 인사이드 아웃이라는 큰 파도를 소란없이 일렁이는 대로 잘 타는 모양이었습니다. 



 1. 자아에 대한 상상력


 사람들은 흔히 이런 착각을 저지릅니다. '내가 나일 수 있는 까닭은 나라는 자아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틀린 생각일 수 있습니다. 인사이드 아웃은 철저하게 한 사람이 그 사람일 수 있는 이유를 기억들 속에서 찾습니다. 라일리는 태어날 때부터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기억을 받아들이고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분류하거나 강렬하거나 미지근한 기억으로 분류하면서 '자아'를 만들어갑니다. 그래서 인사이드 아웃에서는 자아는 하나의 독립적인 실체이라기보다 '기억들의 총체'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기억들을 바탕으로 다양한 '섬'을 짓고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자아가 변화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미래에 어떤 일이 닥치고 어떤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자아는 깨질 수도 있고 더 굳건해질 수 있습니다. 그 파란만장한 기억들을 어떤 감정들을 가지고 받아들일지가 중요합니다. 여기서 감정과 기억이 어떤 상호작용을 하는지, 어떤 기억들이 우리 뇌리에 박힐지가 '나'라는 존재를 만들어줍니다.



 2. 기억에 대한 상상력


 추상적인 기억을 가시화하려 노력한 픽사의 노력이 절실하게 느껴졌습니다. 둥근 유리에 알록달록한 색을 더해 어떤 감정을 느낀 기억인지 한눈에 파악되는 게 만든 건 물론이고, 잠자는 동안 기억이 해마를 통해 우리의 대뇌에 기록된다는 실제 뇌과학 을 근거로 극에 기억이 차곡차곡 쌓이는 과정을 잘 녹여냈습니다. 저장된 기억들이 이후에도 어떤 식으로 버려지거나 회상으로 다시 상기되는 등의 과정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현실 속에서 기억의 양에 압도됨을 셀 수 없이 쌓인 기억 구슬의 미로를 통해 은유하기도 했습니다.

구슬 속에 비치는 기억이 라일리 1인칭으로 그려져야 정상이지만 극중 몰입을 위해 3인칭으로 그린 것에도 픽사의 고민이 얼마나 심도있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중요한 기억, 강렬한 기억에 밀려 사라지는 사소하고 일시적인 기억들에 대해서도 픽사는 놓치지 않았습니다. 인사이드 아웃은 우리가 한 때는 정말로 소중히 여겼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명받지 못하여 쓸쓸히 머리속에서 사라져가는 과정도 그립니다. '빙봉'이 코어 기억으로써 구슬로 보관되지 않았지만 라일리에게 무엇보다 소중한 건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함께 소중한 시간을 보냈던 빙봉처럼 인사이드 아웃은 관객들에게도 자신만의 빙봉이 무엇이었느냐고 물음을 던집니다. "여러분의 빙봉은 무엇인가요?"



3. 상상력에 대한 상상력


 인사이드 아웃은 현실에서 경험한 구체적인 기억이 아니라, 추상적인 생각과 감상에 대한 묘사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사실 감정을 5가지 주인공으로 설정한 뼈대가 되는 상상력은 웹툰 '유미의 세포들'에서도 비슷한 모티프가 등장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어릴적 봤던 만화 같은 곳에서 쉽게 쓰인 아이디어이긴 합니다. 하지만 이런 모티프는 사실 연막이였고, 그 안에 담긴 인사이드 아웃이 그려낸 세계관들은 저의 상상력을 초라하게 만들어줬습니다 . 

우리가 꿈을 꾸는 과정을 스튜디오처럼 익살스럽게 상상했지만, 그러나 누구나 공감할 수 있게 묘사한 점. 기억의 과정을 거치면서 사고 대상이 추상화가 이뤄지는 과정도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잠재의식을 지하 속 감옥으로 표현하고,(삐에로를 통해 어떤 식으로 잠재의식이 형성되는지를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묘사하고 잠재의식이 꿈에 등장하는 과정을 보여준 것도 박수칠만한 일이었습니다.) 이상형 남자를 찍어내는 기계 등 픽사가 시도한 상상력에 대한 상상력은 매우 다양했고 극 중에서 기름처럼 떠다니지 않고 자연스럽게 틈틈히 등장시키며 관객들을 즐겁게 해줄 수 있었습니다.

머리속이라는 낯선 공간을 픽사가 그렇게 반짝반짝하게 담아낼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머리속으로 생각하는 상상들 대부분이 시각화되었고 픽사는 보란 듯이 상상력을 상상력으로 풀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4. 담론

 

 인사이드 아웃이 간지럽히는 분야는 대단히 다양합니다. 심리학은 물론이고, 유아교육학, 뇌과학, 정신건강의학, 심리철학 등의 학술적인 분야들이 있겠네요. 그리고 영화관으로 유혹하는 계층도 다양합니다. 미취학 아동은 물론이고, 청소년 대다수는 토이스토리를 만든 회사의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니까요. 그리고 아기자기한 캐릭터들은 여성들의 마음을 사는 데 성공한 걸로 보입니다. 인사이드 아웃의 관람객의 60% 이상이 여성관객들이니까요. 그리고 어린 아이를 기르는 부모님들도 아마 인사이드 아웃 소식을 듣고 영화관에서 나름 육아의 깨달음을 얻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인사이드 아웃은 로튼 토마토(www.rottentomatoes.com/)에서 98%지수를 획득했습니다. 이는 매드 맥스와 같은 급이며, 굉장히 평이 좋은 편입니다. 국내에서도 여러 커뮤니티를 통해서 이미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메르스라는 흥행 저해 요소도 사라졌고, 무더위를 피해 영화관으로 도망가는 분위기를 타고 겨울왕국만큼의 호성적을 거둘 수 있을 거라고 함부로 추측해봄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