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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2016 그래미 어워드 신인상 후보 Courtney Barnett(코트니 바넷)




0. 58회 그래미 어워드 베스트 뉴 아티스트 상


 58회 그래미 어워드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쟁쟁한 후보들이 즐비한 가운데 일생일대 한 번 후보에 오를 수 있는 이 상이 누구에게 돌아갈지 귀추가 모아지고 있습니다. James Bay, Sam Hunt, Tori Kelly, Meghan Trainor라는 쟁쟁한 후보들과 자웅을 겨루고 있는 코트니 바넷은 5명의 후보 중 유일하게 국적이 미국이나 영국이 아닙니다. 그녀는 호주 멜버른 태생이며, 앨범 제작 기간 동안 호주에만 머물렀던 토박이 아티스트입니다. 멀리는 AC/DC부터 가깝게는 Gotye, Lorde 등 꾸준히 훌륭한 아티스트를 배출하는 호주, 뉴질랜드가 또 하나의 스타를 배출해냈습니다. 또한 그녀는 할머니에게 꾼 돈으로 자기 스스로 만든 레이블을 통해 앨범을 공개했으며 레이블 소속 아티스트의 프로듀싱도 맡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그녀는 멜버른을 기반으로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개척하는데 성공한 인디 아티스트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거꾸로 말한다면, 이미 큰 레이블의 힘을 등에 업고 유리한 지리적 환경으로 인지도를 쌓을 수 있는 다른 경쟁자에 비해서 불리한 점도 상당히 많다는 점이겠지요. 그녀는 왼손잡이에 레즈비언이기도 합니다. 음악뿐만 아니라 정체성도 마찬가지로 마이너합니다..!



1. 신선함

 

 그녀는 매우 신선한 음악을 들려줍니다. 늘어지고 강한 디스토션 기타로 점철되는 음악을 배경으로 나지막하고 수동적으로 내뱉지만 또박또박하고 리드미컬한 바넷의 목소리는 자꾸 음악을 듣게 하는 매력을 발산하고 있습니다. 가사는 큰 메시지나 이미지를 담기보다 매우 시시콜콜하고 일상에 친화적이지만 게으름이 느껴지는 목소리 때문인지 굉장히 철학적인 의미가 가사가 그리는 이미지에 겹쳐서 엿보이는 것처럼 들립니다. 모든 가사들이 즉흥적으로 들리기에 실제로 바넷이 천재성으로 무장한 게으름뱅이가 아닐까 싶지만, 실제로는 바넷의 철저하고 오랜 숙고와 고민을 거쳐 탄생한 가사라는 점에서 그녀가 얼마나 치밀한 매력을 가졌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잔디를 깎으면서 천식을 얻게 된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어 노래에 담아 'Avant Gardener'를 작사/작곡하는 형태입니다. “The paramedic thinks I’m clever ’cos I play guitar / I think she’s clever ’cos she stops people dying(응급구조원은 나를 똑똑하다고 생각하겠지 왜냐면 나는 기타를 연주하니까. 나는 그녀가 똑똑하다고 생각해, 왜냐면 그녀는 사람이 죽는 걸 살리거든)” -Avant Gardener 중. 국내에서는 일상을 독특한 창법으로 노래하는 장기하와 비슷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녀는 한때 사진작가와 미술가를 꿈꾼 다양한 예술 감각을 소유한 장본인이고 그녀의 첫 스튜디오 앨범 'Sometimes I Sit and Think, and Sometimes I Just Sit'의 앨범 자켓을 스스로 그리기도 했습니다. 음악에 대한 강력한 욕구에 결국 그 꿈들을 내려놓았고 기타를 들었습니다. 그녀의 첫 정규 앨범 전엔 두 개의 EP 앨범이 있었으며, 이미 이 두 EP 앨범으로 평단의 관심을 모으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2014년에 완성했지만 투어 일정의 혼선 때문에 1년 늦게 공개한 첫 정규 앨범으로 그녀는 그래미 어워드 베스트 뉴 아티스트 상 후보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2. 불안과 우울


 바넷은 스스로 과거 우울증에 시달렸고, 병을 이겨내는 과정 속에서 음악적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습니다. 우울증을 극복하는 과정 속에서 배웠던 건 병을 억압하고 타도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기보다 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우울에 휩싸였을 때 항우울제를 섭취하기보다 느낀 생각을 음악에 담으려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노래들이 상당히 자기 비하적이고 자기 모멸적인 가사를 가지기도 합니다. 그렇게 우울증과 고군분투하면서 누구에게 있을 법한 일상을 특별하게 포착하는 시선을 재료로 그녀의 독특한 가사는 그녀의 음악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3. Award for Courtney!


 사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코트니 바넷이 상을 수상하기란 현실적으로 많이 힘들 겁니다. 어쩌면 후보에 올랐다는 사실 하나로 코트니 바넷은 기뻐해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경쟁자인 메간 트레이너는 요즘 가장 핫한 팝 트렌드의 선두주자며, 샘 헌트는 미국에서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사랑 받은 컨트리 음악을 하는 동시에 젊은층에게도 호환성 높은 준수한 음악을 보여줬고, 토리 켈리는 미국을 대표할 차세대 여성 싱어송라이터입니다. 제임스 베이는 당장 평단과 대중에게 널리 사랑 받아 2015년을 대표할 록 아티스트이니까요. 심지어 그래미에서 오랜만에 록 장르라는 타이틀을 단 후보에게 상을 주겠다고 한다고 할지라도, 아마 주인공은 코트니 바넷이기보다는 제임스 베이일 것입니다ㅠㅠ

하지만 저는 음악의 특수성, 다채로움, 개성이라는 측면에서 제임스 베이보다 코트니 바넷이 더 경쟁력있는 후보라고 생각합니다. 과장을 조금 섞자면, 제임스 베이는 이미 있었던 음악들을 변주 혹은 재생산해 곡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합니다. 음악은 죄다 같은 끈적한 전자기타를 시작으로, 제임스 모리슨이 생각나는 익숙한 보컬이 흐릅니다. 이런 익숙하고 뻔한 레퍼토리가 앨범 전체에 획일성을 부여해 노래를 듣다보면 진부한 느낌이 들기 쉽습니다. 제임스 베이가 이렇게까지 성공적인 아티스트가 될 수 있었던 까닭 중 하나는 세계적인 록 씬의 침체 속에서 봐줄 만한 록 아티스트들이 전무한 가운데 그나마 준수하게 밸런스 잡힌 음악을 선보여줬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코트니 바넷은 2015년이 아니라 록 음악이 주류 음악이었던 2000년 대 초반은 물론, 90년대 얼터너티브가 가득했던 황금시대로 가져다 놓아도 분명 다른 음악과도 변별력을 가지는 개성 짙은 음악입니다. 시대를 초월하는 음악이라는 점에서 코트니 바넷이 이번에 상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저 혼자 자그마하게 응원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