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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1989년 영국 힐스보로 참사 그리고 세월호





 1989년 4월 15일 영국 리버풀FC 팬들은 FA컵 준결승 관람을 위해 중립경기장인 힐스보로 스타디움을 방문했다. 팬들은 결승으로 가는 길목에서 축구를 즐기러 리버풀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떠난 것이다. 하지만 비극은 출입 과정에서 시작했다. 경기장 운영 미숙과 경찰의 통제 실패로 1600명이 들어갈 관중석에 3000명이 넘게 들어가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결국 경기 시작 후 압사의 위험을 느낀 사람들은 위쪽 관람석의 사람들의 손을 붙잡고 위층으로 대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남은 사람들은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고 경기 시작 5분만에 철조망은 무너졌다. 경기가 중단되는 사태를 거쳐 사고 수습 후 94명이 압사했고, 766명이 부상을 입는 결과가 드러났다. 후에 2명이 사고 후유증으로 추가 사망했고, 총 96명의 축구팬은 축구 경기를 보러갔다 영영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사고 직후, 대처 총리와 정부는 희생자들이 난동을 부리며 사고를 초래했다고 거들먹거렸고 단순 사고로 인한 사망으로 종지부를 찍으려했다. 경찰은 조직적으로 사고에 대한 책임을 회피했고 96명의 희생자와 유가족은 언론의 날선 비난까지 받았다. 하지만 유가족은 사건 규명을 위해 포기하지 않았다. 순수하게 축구를 보러 간 이들이 무고하게 세상을 떠났음을 증명하려 노력했다.


그리고 2012년, 사건의 진상조사 결과가 나왔다. 경기장에 도사린 위험에 대해 운영진이 미처 파악하지 못했고, 당국의 조직적인 책임 회피 움직임이 있었다는 결과였다. 심지어 초동 대처와 구조에서 미숙함을 보여 희생자가 더 늘어났다는 결과까지 나왔다. 

그리고 얼마 전 2016년 4월 26일, 사건이 발생한 후 27년이 지나서야 법원은 희생자들이 정부와 경찰, 운영 당국에게 '불법적인' 죽임을 당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진실을 찾기까지 27년이 걸린 셈이다.


우리는 2년이 조금 넘었다. 유감스럽게 힐스보로 참사와 하루 차이를 두고 비극이 2014년 4월 16일에 일어났다. 혹자는 아이들이 사고로 인해 안타깝게 생사를 달리 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부와 해경이 보여주는 무책임한 모습과 국가 지도자가 보여주는 답답한 태도는 힐스보로로부터 기시감을 느끼게 한다. 세월호가 침몰하게 된 청해진해운의 방만한 운영과 사태 전후로 보여준 정부의 의뭉스러움은, 295명 희생에 대해 아무런 설명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여전히 정부가 취하는 태도는 사고사 이상이 아니다. 아이들이 단순하게 천재지변으로 인한 죽음이 아니라 관계 당국의 부정으로 죽임 당했음이 규명될 때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까.


힐스보로 유가족은 법원에서 '불법적'인 죽임을 당했다고 선고 받은 후, 법원 입구에서 리버풀FC의 응원가 'You'll Never Walk Alone'을 불렀다. '당신은 결코 혼자 걷지 않을 거야'라는 희망찬 메시지는 유가족을 지탱해준 소중한 글귀였고, 억울한 죽음이 속 시원하게 밝혀졌음을 기념하는 값진 메시지였다. 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비슷하게 죽임을 당한 이들을 위한 응원가이기도 하다. 이들의 노랫말이 세월호의 아이들을 기다리는 우리나라까지 전해졌길 간절히 바란다. "여러분 당신들은 혼자 걷지 않을 겁니다. 계속 나아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