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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싱 스트리트, 낯선 익숙함 이거 뭐지?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원스'는 'Falling Slowly' 같은 달달한 킬링 트랙이 있어 많은 관객을 청각으로 간지럽히는 강점이 있었고, '비긴 어게인'은 친숙하고 대단한 슈퍼 스타가 여럿 등장해 한국 관객을 홀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싱 스트리트'는 어떻나요? 더블린이라는 배낭 여행족도 잘 찾지 않는 아일랜드 수도를 배경으로 하고 심시어 시대도 30년 전입니다. 이름이나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배우진, 그리고 음악도 비교적 낯선 스쿨밴드와 록음악입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싱 스트리트'가 한국에서 취할 수 있는 프로모션 전략은 단 하나, '원스'와 '비긴 어게인'이라는 뜻밖의 흥행을 거둔 존 카니라는 감독을 간판으로 거는 것뿐이었죠. 영화는 대박까진 아니지만 입소문으로 꾸준히 관객수를 누적하고 있고 잇단 호평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분명 소소한 흥행과 관객의 호평이 이어진다는 사실 이면엔 속사정이 있기 마련이겠지요.


1. 음악 영화의 블루 오션

 한국 관객이 모두 음악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한국에서 음악 영화는 대부분 흥행합니다. 즉, 음악 비중이 크거나 음악 자체를 큰 포맷으로 삼은 영화는 대체로 흥행하는 경향이 언제부터 있었습니다. '겨울왕국'을 비롯한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물론, '레미제라블'이란 중량감있는 영화부터 '위플래시'라는 광기를 담은 영화까지 여지 없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여기서 가장 대표적인 주자는 존 카니 감독이겠지요. 다른 나라에 비해서 우리나라가 음악을 유난히 좋아한다는 통계나 객관적 자료는 없지만, 영화에 음악을 담아내는 문법엔 대체적으로 '극호'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2. 모나지 않은 성장 드라마

 영화 이야기는 처음부터 하나로 쭉 뻗어나갑니다. 한 아이가 짝사랑을 기폭제로 음악적 성취를 이뤄내며 한껏 성장한다. 영화는 한마디로 이렇게 요약 가능합니다. 그만큼 영화는 단순한 구조를 채택했습니다. 멘토로써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형과 서로 믿고 의지하는 밴드 동료들, 그리고 사랑에 충실한 연인까지 그다지 입체적인 인물도 없습니다. 콘텐츠 홍수 시대에서 경쟁에서 질세라 누구보다 복잡한 서사 구조를 채택하고 신박한 방법으로 들었다놨다하는 연출(곡성, 시빌워)에 사람들이 많이 지친 것도 이 영화를 좋아하게 된 중요한 이유입니다. 영화관에 점점 가벼운 마음으로 갈 수 없는 영화들만 걸리는 시기에 힐링과 긍정적인 기운을 얻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싱 스트리트가 빛날 수 있는 이유가 있는 것 아닐까요.


3. 제도 교육에 대한 반감

 싱 스트리트는 좋은 어른이 되는 데,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데 있어서 제도 교육은 정답을 주지 못한다는 세계적 공감대가 녹아있는 영화였습니다. 열악한 학교로 강제로 전학가게 된 주인공이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하며 이렇게 비참하고 비루한 청소년기로 영화가 시작합니다. 주인공을 부당하게 옥죄는 교사와 괴롭히는 불량학생이라는 익숙한 클리셰 역시 빠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음악을 통해 루저에서 트랜드세터로 진화하는 과정이 드러납니다. 복장과 머리스타일이 매번 달라지는 학교 입장씬은 주인공이 얼마나 개성있고 멋진 녀석으로 변모해가는가를보여주며 관객에게 주인공이 나날이 성장해가고 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공교육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그것을 학교 밖 자기성취로 어른이 되는 과정은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은 상상해봤을 판타지입니다.

화룡점정으로 밴드 '싱 스트리트'가 무대 위에서 마지막 곡으로 부른 'Brown Shoes'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강압적인 제도 교육에 대한 반감을 로큰롤의 본류 정신인 '저항' 코드로 불러내 관객에게 삽상한 마음을 선사했으니까요.


4. 들어올 때 노 젓는 레트로

 지금 복고만큼 리스크 적은 문화 코드가 있을까요. 우리나라에도 예전 주류 문화에 은밀하게 끼워팔렸던 복고가 '응답하라'와 '토토가'를 통해 전략적 콘텐츠의 지위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제 복고만을 내세운 콘텐츠는 촌스러움과 식상함이란 근거로 손가락질 받지 않습니다. 더 복고스러울 수록 환영 받고 공감을 얻는 시대가 열렸습니다. 싱 스트리트에도 그 레트로 문화가 가득 담겼습니다. 음악적 복고, 즉 젝스키스의 역할을 '듀란듀란'이 해냈고, 시각적으로는 VHS에 담긴 뮤직비디오가 해냈습니다. 최신 상영관에서 지직거리는 LP판 노래를 듣고 자글자글한 VHS 영상을 즐기는 건 재밌는 경험이었습니다.

또 흥미로운 건 분명 아일랜드의 1985년을 우리나라 관객이 겪어봤을리 없는데도 우리는 영화가 드러내는 적극적 촌스러움을 보면서 웃을 수 있었고, 당시 패션과 메이크업을 보면서 기시감을 느낄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강한 몰입을 경험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레트로 문화는 어쩌면 한 지역에만 갇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세계 공통의 문화 코드가 된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