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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추모 공연 '원 러브 맨체스터'가 추모 공연이 아니라고?




 5월 22일 맨체스터에서 테러가 발생했다. 아리아나 그란데의 공연이 있었던 맨체스터 아레나 공연장 바로 바깥쪽에서 폭탄이 터졌다. 퇴장하던 관객들 중 22명이 숨지고 5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영국에서의 발생한 잇단 소프트타깃 테러 중 하나였다. 영국은 물론 전세계적으로 맨체스터의 비극에 대해 추모의 메시지가 이어졌다.
테러의 화를 피했지만 그 누구보다 마음이 무거웠고 까닭 없는 죄책감도 가졌을 아리아나 그란데가 주축이 되어 추모 공연을 추진했다. 6월 4일 올드 트래포드 경기장에서 '원 러브 맨체스터(One Love Manchester)'라는 이름으로 팝스타들이 대거 참여한 큰 규모의 추모 자선 공연이 열렸다. 콜드플레이, 리암 갤러거, 케이티 페리, 마일리 사일러스, 저스틴 비버 등 맨체스터를 위로하러 온 스타와 5만여 명의 팬들도 함께 했다.






테러가 일어난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았고, 바로 전날에는 런던 브릿지에서 또 다른 테러가 있었는데도, 시민들은 정해진 시간, 한 장소에 모였다. 5만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함께 증오보다 센 사랑을 주제로 노래했다. 자국엔 BBC ONE 통해서 그리고 전세계 38개국에 생중계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불편한 시선이 쏟아졌다. 희생자와 희생자의 가족들에게 추모와 위로를 가져야할 시기인데 팝스타들이 모여 흥겨운 노래를 부르고 사람들이 호응하며 들썩들썩 뛰는 그런 무대가 가당키나 하냐는 주장이었다. 이런 목소리는 우리나라는 물론 영국 현지에서도 불거졌다.
 
'원 러브 맨체스터' 공연을 살펴보자. 공연을 지켜보면 위의 불편한 주장의 절반은 엄연한 사실이다. 추모 공연이라고 하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차분하고, 조용한 곡이 몇 없다. 테이크 댓은 빠른 비트의 'Shine'을 불렀고, 퍼렐 윌리엄스는 마일리 사일러스와 리듬에 춤을 추며 'Happy'를 불렀다. 케이티 페리는 흰색 짧은 원피스를 입고 'Roar'를 부르며 온 무대를 뛰어다녔다. 걸그룹 리틀 믹스의 복장은 노출이 꽤 있는 수준이기도 했다. 무대 내용만 보고나면 추모 공연이라고 쉽게 눈치챌 수 없다. 관객은 어떤가. 많은 관객들이 목마를 타며 손과 몸을 흔들며 무대를 즐기고 있다. 5만여 명의 꽉찬 무대는 들썩거리고 스타의 모습을 찍으려 연신 스마트폰을 들고 있다. 이런 모습 역시 일반적인 추모랑은 거리가 가깝지 않았다.






그럼 '원 러브 맨체스터'가 테러에 대한 추모를 구실 삼아 팝스타는 얼굴을 알리고, 팬들에겐 간만에 뜨거운 스타들이 잔뜩 있는 슈퍼 콘서트를 즐길 수 있는 기회에 불과했다고 말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다. 이는 추모의 방식과 수단을 폭 넓게 생기지 못해서 할 수 있는 말이다. 22명이 사망해 비통한 가족들과 불안에 떠는 시민들이 명백하게 있는데도 저렇게 뛰노는 '원 러브 맨체스터'가 불편한 이유는 추모를 다양한 양태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류의 얕은 몽니다.

다함께 검은 옷을 입고 숙연한 분위기에서 차분한 인사를 나누며 고인의 추억을 기려야만 추모가 아니다. 추모엔 비극의 원인에 대한 저항의 메시지가 있을 필요가 있다. 이번 공연은 폭력에 대한 똑같은 보복과 증오가 답이 아님을 선언하는 무대였다. 이번 공연은 폭력에 대한 무조건적인 회피가 아니었다. 테러가 항상 사람이 많은 곳에서 발생하는 사실이 분명함에도 사람들은 빼곡하게 모임으로 테러에 대한 불안과 걱정을 잠재적 테러에게 선언하는 자리였다. 테러는 항상 사회의 분열과 혼란을 원했고, 그에 쉽사리 호응하지 않는 뿌리 깊은 영국의 공동체 의식을 상징하는 무대이기도 했다. 

이 공연은 예매 시작 20분만에 매진됐다. 5만 명 중 아리아나 공연장에 참석한 1만 4천 명의 관람객 역시 무료로 초대 받았다. 영국에서만 천 만 명이 시청했다. 영국 적십자는 입장 수익금을 통해 3백만 달러에 가까운 자선 기금을 조성할 수 있었고, 이는 피해자와 그들의 가족들을 위해 쓰인다. 아리아나 그란데 역시 다음 신곡인 'One Last Time'을 재발매해 모든 수익을 기금에 기부할 것이라 말했다. 돈이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최고의 보상은 아니겠지만, 이 공연은 훌륭한 본보기가 되는 것 역시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명백했다.

흔히 말하는 불편한 시각은 두 상황에서 발생한다. 새로운 가치와 질서를 받아들인 이가 구시대적 유물를 바라볼 때. 반대로 묵은 사고관을 가진 이가 새로운 풍토와 트렌드를 마주했을 때다. 요즘 여기저기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프로불편러는 흔히 전자에 속한다. 이들이 모든 경우에서 올바르다고는 할 수 없지만, 대개 유의미하거나 주목할 만한 메시지를 남기곤 한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엔 근거 없는 고집이 그 근본에 가득하고 말로엔 꼰대로 빠지기 일쑤다. 맨체스터 추모에서도 이런 시선이 작동한 것이다. 추모란 대상에 대한 진심어린 마음이 핵심이지 겉으로 드러난 모양새가 아니다. 원래 하던 방식에 조금 어긋난다고 불만에 휩싸여 저 깊은 곳으로 홀로 침착해선 안 된다.




아리아나 그란데는 공연의 가장 마지막 무대에 올라 'One Last Time'을 열창했다. 그리고 열창을 마치고 울면서 말했다. "Manchester, I love you with my heart. Thank you so so so much." 아리아나 그란데가 테러 직후부터 지금 그리고 앞으로도 큰 슬픔 속에 살고 있을 것이다. 테러의 피해자인 아리아나 그란데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이 공연을 추모 공연이라 부르지 않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