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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셜록 <유령신부>와 우리의 처녀 귀신






#이 글은 <유령신부>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셜록 <유령신부>가 극장가에서 좋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이 굳이 티비를 탈출해 극장에 걸려야하는가는 논란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관객들에게 드라마 <셜록>을 시청한 사람들만이 온전하게 즐길 수 있을 거라는 언급은 <유령신부>의 어느 프로모션이나 광고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이에 많은 관객들이 '낚시'를 당할 수밖에 없었고, 피해 사례가 인터넷 여기저기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어쨌든 이런 논란에도 <셜록>을 '꽤' 좋아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나쁜 번외편은 아니었습니다. 2시간에 가까운 러닝타임은 드라마에 비해서 다소 긴장의 수축과 이완 템포가 느려 긴장감은 부족한 편이었지만, 짜임새는 드라마의 그것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유령신부>를 시즌 4의 0회차로 인식하고 있지요. 많은 사람들이 본편과는 스토리 상으로 접점이 크지 않을 거라 생각한 까닭에 <유령신부> 말미에 드러난 시즌 3의 엔딩과 이어지는 스토리 구조는 반전 아닌 반전이었습니다. 결국 <유령신부>는 드라마 팬들에게 있어서 새로운 시즌을 준비하며 마음을 달랠 작품이기보다는 시즌 4에 대한 기대감만 고조되는 작품이 되어버렸습니다.


 셜록 <유령신부>에 담긴 스토리 구조는 복잡하지 않습니다. 머리에 총을 쏴 자살한 귀신이 살아나서 사람들을 죽이고 다닌다는 소문이 나는데, 알고 보니 진짜 유령이 아니라 사회에서 남성에 비해 열등한 권리만 가질 수밖에 없던 여성들이 꾸민 속셈으로 밝혀지는 과정입니다. 셜록이 기억의 궁전에서 그렸던 19세기의 모습은 결국 투표권조차 없는 여성들의 보이지 않는 인권운동을 과격하게 표현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유령신부>는 시즌3의 결말과 앞으로 나올 시즌4의 연결고리가 되면서, 동시에 19세기 말 여성들이 인권 신장을 위해 투쟁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여자에다가, 귀신에, 하얀 옷하면 생각나는 게 있습니다. 바로 우리나라의 처녀귀신이죠. 처녀귀신에 대해서 사람들이 공유하는 이미지와 상징은 거의 같습니다. 처녀귀신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 귀신이며, 여느 귀신 목격담이나 납량물에서 나오는 귀신들은 죄다 흰 소복에 긴 머리를 가졌습니다. 가만 생각해보면 왜 우리나라에 처녀귀신이 이렇게 아이콘이 된 것인가는 궁금했던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유령신부>를 보게 되면 그 이유를 조금은 유추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유령신부>에서 여성들이 유령신부를 대동한 이유는 차별에 대한 반발감이 그 동기입니다. 여자를 사람처럼 대우하지 않는 남성들에 대한 분노와 연대의식은 유령으로 상징되고 대표됩니다. 여성들이 직접 나서지 않고, 죽음을 초월한 존재 그러니까 시공간에 벗어난 유령을 대동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여성들을 옥죄이는 남성들에게 두려움을 안겨주고 겁을 줄 수 있는 건 힘없고 목소리 낼 수 없는 여성들 자신들이기보다 유령이라는 사실입니다. 비현실적이고 불가사의하고 괴기한 실체아닌 실체는 남성들에게 충분히 특정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까닭입니다.


 처녀귀신과의 접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처녀귀신의 존재의 근거는 항상 한(恨)입니다. 한이 있기 때문에 저승에 가지 못하고 이승에 남아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이죠. <유령신부> 속 에밀리아의 존재는 바로 한에 맞닿아있습니다. 남편에 대한 원한을 가지고 폐결핵으로 죽음을 마주한 에밀리아는 헛되이 죽음을 마주하기보다 여성들을 대표해 한을 가진 유령으로 탄생하기로 결심합니다. 자살한 에밀리아의 연이은 출현은 소문을 통해 확대/재생산되면서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안겨주는 동시에 남성중심사회에 철퇴를 내려칩니다. 여성인권을 외치는 캠페인도 아니기 때문에 남성들은 강압적으로 막을 객체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귀신이 되어버립니다. 귀신에게 그저 혼쭐나는 수밖에 없는 것이죠. 

다시 처녀귀신으로 이야기를 돌려봅시다. 처녀귀신이 우리 역사 속에서 살아 숨쉬는 이유도 마찬가지라는 점입니다. 신분제와 가부장제의 구조 안에서 여성들은 남성들 존재의 부속품에 그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허난설헌은 위대한 업적에 불구하고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에게 허균의 누이에 그칠 수밖에 없었고, 신사임당은 유난히 좋은 '어머니'로써 강조될 뿐입니다. 여성들은 우리 어릴적 위인전 모음집에서 그저 가부장제에서 모범 답안이 될만한 인물만 겨우 이름을 올릴 수 있었고, 이럴 수밖에 없었던 게 우리 역사입니다.


 할 말 많고 하고 싶었던 게 많았던 여성들의 목소리는 남자들이 억누르고 막는다고 해도 삭아들지 않았습니다. 바로 조선시대 여성들의 삭아들지 않은 마음은 한이 되었고 비로소 처녀귀신의 신화가 되어 구천을 떠돌았습니다. 그리곤 시간을 초월해 그 분노와 답답함이 처녀귀신의 이미지로 지금까지 전해지게 된 것입니다. 그들도 욕구와 야망을 가진 엄연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람의 몸으로는 말을 할 수 없었고, 귀신의 이름을 빌려 말했던 건 아닐까요. 처녀귀신은 과거 우리 땅에서 멸시당하고 뒤안켠에 얌전히 있어야만 했던 여성들의 유산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