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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영화 '그래비티' 아카데미 7관왕, 음향과 음악에 대해서

 


 한국 시간으로 지난 3월 3일 LA 돌비극장에서 있었던 제8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그래비티가 2013년 가장 뛰어난 영화로 인정 받았다.  시각효과상, 음향상, 음향편집상, 촬영상, 편집상 등 기술상 부문을 휩쓴 데 이어, 음악상·감독상까지 수상하며 7관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사실 개봉 전부터 기대감이 엄청난 작품이였으며 국내에서도 SF작품으로는 드물게 흥행에 성공했고, '아바타' 시절 좋은 특별관에서 봐야한다는 입소문처럼 그래비티 역시 많은 관람객을 아이맥스나 m3관 같은 시각을 더 잘 만족시켜주는 곳으로 이끌었다. 그것에 걸맞게 그래비티를 IMAX 3D로 감상한 사람들 사이에서 영화 감상이 아닌 우주 체험이라는 재밌고 신선한 평가까지 받기도 했다. 하지만 2013년이 지나가면서 작품성을 갖춘 쟁쟁한 영화들이 등장하면서 사실 오스카상을 휩쓸 거라는 생각은 다들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식어버린 기대를 보란 듯이 뒤집으며 그래비티는 대박을 터뜨렸다. 

NASA는 그래비티의 7관왕을 축하하기 위해 포스팅을 하기도 했다. 이 포스팅엔 축하 영상과 특별 사진을 담아냈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그래비티가 거둔 수확은 단연 감독상과 시각효과상이 대표적이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각본과 CG의 끝판왕이 된 영화답게 그쪽 부문에서 상을 가져온 건 어쩌면 당연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우리의 귀는 어땠는지 묻는다면, 일단은 물음표를 던져야한다. 하지만 왜 음향상, 음향편집상, 음악상 세 부문 역시 그래비티가 가져오게 된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선 그래비티는 우주 공간에서의 사건을 다룬다. 진공 상태인 우주에선 공기라는 매개체가 없어 소리의 전달이 지구와 같지 않다. 우주공간에서 바로 눈에 보이는 대상이라도 소리는 들을 수 없다. 여지껏 수없이 우주공간을 그린 SF영화도 있었고, 게임도 있었지만 실제처럼 우주에서의 음파를 다룬 적은 없다. 다시 말해서 음향은 시각에 종족되어버렸다. 미사일이 폭발하는 장면에서는 불꽃과 함께 폭발음이 관객에게 들렸고 관객은 그 광경에 의구심 대신 더 자연스러운 몰입을 가능케했다. 하지만 그래비티는 달랐다. 그래비티는 우주체험이라는 찬사에 걸맞게 모든 음향을 그곳에 있는 것처럼 묘사했다. 초반 20분짜리 롱테이크 씬에서 허블 우주 망원경을 점검하는 과정에서 들리는 마찰이나 드릴 소리는 인물들이 직접 접촉해야만 들렸다. 그 이외의 소리는 모두 실제처럼 관객이 들을 수 없었다. 심지어 폭발 잔해물이 우주왕복선과 허블 망원경을 덮치는 급박하고 시끄러운 장면에서도 여전히 들리지 않았다. 시각과 청각을 동기화한 전통적 묘사는 실제와 다르지만 더 잘 몰입하게 하고 관객을 휘어잡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안전한 방법을 취하는 대신 새로운 도전을 한 그래비티는 음향에서 상을 받을 수 있었다. 


음향은 그렇다치고

그렇다면 음악상은 어떻게 된 것일까.





그래비티의 음악 감독은 스티븐 프라이스(Steven Price)다. 그는 캠브릿지 대학에서 음악을 공부했고 반지의 제왕 시리즈, 아임낫데어 등에 음악 부문에 참여했지만 음악 감독으로는 다른 영화 음악계의 거장들만큼 대표적인 간판 필모그래피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런 배경에서 그래비티가 음악에는 욕심이 없었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뚜껑을 열어본 우리는 결과론적으로 엄청난 성공이었다고 밖에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 원인을 돌이켜 보자면 그래비티 음악에 대한 내 생각은 아래와 같다.

어떻게 보면 그래비티의 음악은 사실 시종일관 심심했어야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의도에 더 부합됐을지도 모른다. 쿠아론 감독은 워너브라더스가 강요한 멜로 라인이나 긴박한 휴스턴의 모습이라든가 하는 클리셰를 거부해 기름끼를 확 뺐다. 그만큼 대중친화적이기보다 자기가 생각하는 영화 본래의 모습을 날 것으로, 실제적으로 그리고 싶어했다. 따라서 음악도 역시 그의 취지에 따라 필요이상으로 자극적이고 돋보여서는 안됐다. 그래서 그래비티 OST를 다 들어보면 영화 초중반부에 실리는 곡들은 우주처럼 잔잔하고 고요한 편에 가까워 배경음악이라고 부르기 어색했다. 물론 극중 여주인공이 탈출에 열정을 가지고 긴박함의 끈이 조여질 때 음악은 현악기의 고음을 동원해 극의 고조를 부축이는 부분에서는 약간 감동을 조장(?)하는 듯한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물론 그 음악이 닥터 스톤의 살고자하는 열망을 더 감동적으로 비춰주는 데에는 적합해서 크게 싫은 소리를 덧붙이고 싶지는 않다. 단점을 더 들춰보자면, 어떤 부분에서는 음악이 오히려 우주 속 특정 상황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곤 한다. 특히 스톤이 낙하산 끈을 제거하기 위해 소유즈에서 나와 급하게 처리하는 장면에서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음악 때문에 도리어 긴장이 느슨해지는 측면이 보인다.

이런 단점이 보이긴 하지만 음악은 제 역할을 충분히 했다. 그 이유는 영화가 채택한 (효과음이 들리지 않게 하는)음향적 특수성 때문에 영화 자체에 크나큰 고요가 들어설 자리가 있을 수밖에 없음에도 잔잔하고 무한한 우주를 채울 수 있는 고요함을 갖춘 동시에  관객들을 청각적인 허전함에 불편하지 않게하는 자기 역할을 다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래비티의 음악은 큰 틀에서 봤을 때 영화와 훌륭하게 일치됐고, 어떤 다른 영화와 그 음악의 사이에 견주어서도 훨씬 더 밀접한 모습을 보여줬다.  이런 통일감이 그래비티가 음악상을 거둔 이유라고 생각한다. 이는 분명 다른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채택한 방법, 즉 음악이 영화의 분위기를 지배하고 조율하거나 혹은 필요 이상으로 감성 터치를 하는 양상과는 다르다는 것을 말한다.

이처럼 여러가지 측면으로 그래비티의 청각에서의 신선한 도전과 시도는 참으로 재미있는 점들을 보여준다. 이후에 어떤 영화가 이런 음향, 음악적 특색을 가지고 대중 앞에 나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 방법이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고집에만 적합했지, 사실 대중들이 쉽게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음향적 혁신의 바톤을 누가 받아낼지  벌써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