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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서태지, 아이유 '소격동' 간단평





우선 제작사측에서 전달하는 앨범 소개를 보자.

‘소격동’은 서태지가 작사, 작곡, 프로듀싱을 맡고 아이유가 가창에 참여한 ‘소격동 프로젝트’를 통해 완성된 노래다.

풍성하고 짜임새 있는 일렉트로닉 소스를 기반으로 트랩(trap) 사운드를 가미한 ‘소격동’은 로우 템포에 그루브가 강한 일렉트로닉 곡임에도 불구하고 멜로디 라인을 선명하게 살려 귀를 사로잡는다. 80년대 소격동을 배경으로 완성된 가사는 그리움의 정서를 따뜻한 감성의 노랫말에 담았다. 특히 사운드와 노랫말만으로 낮은 담장과 가로등을 돌아 동네 골목 구석구석이 눈앞에 펼쳐지듯 하는 시각적인 효과를 선사하는 곡이다. 이 곡의 마스터링을 맡은 에비로드 스튜디오의 마일스 쇼웰(Miles Showell) 역시 “개인적으로 이 곡에서 80년대 느낌의 키보드 사운드가 정말 좋다. 이 노래의 마스터링 작업을 하며 내 어린 시절의 추억들을 떠올렸다”고 감상을 전하기도 했다.

‘소격동 프로젝트’의 아이유 버전, 서태지 버전이 순차적으로 공개되는 형식으로 진행되며, 황수아 감독이 연출한 각각 다른 두 편의 뮤직비디오가 퍼즐을 맞추듯 연결돼 하나의 스토리텔링을 형성하며 자연스럽게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될 예정이다. 서태지는 정규 9집 ‘콰이어트 나이트’(Quiet Night)의 첫 선 공개곡에 후배 뮤지션 아이유와 같은 곡을 동시에 발표함으로서 이번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메시지를 마법처럼 드러내고 있다. 서태지X아이유의 특별한 콜라보레이션 ‘소격동’이 가지는 가장 큰 의미는 하나의 노래가 세대가 다른 두 뮤지션을 연결하는 특별한 시간적 공간적 고리가 됐다는 점이다. 그의 노래를 통해 세대와 세대가 동시간에 함께 한다는 의미뿐 아니라 ‘소격동’이라는 하나의 공간을 공유할 수 있게 됐다. 


솔직하게 국내엔 21세기가 되서야 대중들에게 익숙해진 '트랩 음악'을 기반으로 만든 이 노래를 들으면서 80년대에, 그것도 어디있는지 잘 모르는 소격동 풍경을 추억하는 사람은 없다. 마일스 쇼웰의 말마따나 80년대 느낌의 키보드 사운드가 한국사람들에게도 그대로 동감되는 건 아닌데 말이다.

이 추억은 아마 작곡, 작사를 맡은 서태지만이 오롯이 그 추억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음악계에서 가장 핫한 주인공들의 협연을 통해서 없던 기억들조차 눈 앞에 보이는 것처럼 아련해진다. 심지어 뮤비 영상 속 풍경과 이야기와 음악 사이의 긴밀함이 전혀 어색하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그 괴리감을 느낄 수 없기에 컨셉은 서태지가 바라는 곳으로 잘 흘러간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이번엔 신비주의로 가득한 서태지가 익숙하고 귀여운 숙녀인 아이유의 친숙함을 빌려와 5년 전 작품과는 시도가 색다르다는 점에서 쉬이 서태지의 시도를 먼발치에서 잠깐 뒷짐지고 지켜봐야한다.


음악 속으로 들어가보자. 아이유와의 협업 속엔 여전히 음악 색은 서태지의 것만이 가득하다. 그렇기 때문에 긴 시간 음원차트에서 연전연승했던 아이유가 여느 때처럼 차트 정복은 쉬워 보이지 않는다. 서태지는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 주류에서 탈퇴를 선언한 아티스트다.  그 이후 굵직한 노선을 그리며 자신의 음악을 현실화했고 많은 마니아들을 이끌었지만, 항상 대다수의 대중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아티스트는 아니었다. 서태지가 걸어온 디스코그래피를 들춰보면, 소격동이 많은 사람들이 사랑받으며 이어폰을 꽂자마자 트는 노래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이 뿐만 아니라, 서태지를 사랑하는 마니아들에게도 이 곡은 마냥 반갑기만은 하지 않을 것이다. 많은 서태지 팬들이 소격동이 발표되면서 가장 기대했던건 오히려 해피투게더였으면서 어쩌면 방송을 기다리면서 오랜만에 서랍 속 시디를 꺼내서 Take five나 듣지 않을까. Take 곡들이 더 '서태지스럽다'는 건 그들도 반박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 서태지가 부른 소격동은 공개되지는 않았다. 서태지 파트가 공개되면 그 컨셉의 완성도가 농익을 것인지 흐지부지될 것인지 결정될 것이다. 그리고 서태지가 그린 이번 음악의 방향성도 좀 더 뚜렷해질 것이다.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반 걱정반이다.


개인적으로는 아이유 노래 중 단기간에 가장 많이 청취한 곡이다. 동시에 서태지 곡 중에서 가장 신선함을 느낀 곡이다. 그렇지만서도 두 각기다른 시대의 음악 차트의 정복자들이 함께 차트를 뒤엎는 작품을 뽑아내지 못한 점에서는 나도 몰래 아쉬움이 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