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가장 사랑받는 팝 아티스트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을 만큼 대단하고, 해외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까지도 그의 이름은 이제 너무나 낯익은 그 주인공. 전국민에게 질릴 정도로 뇌에 각인된 곡 중에 Let it go와 어깨동무를 나란히 한 I'm yours의 주인공 제이슨 므라즈가 다시 한 번 한국을 찾았다.
그의 내한 공연은 매년 이어지고 있을 정도로 그의 한국에 대한 관심과 반대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그에 대한 애정은 이제 두 자리수 연도에 가까워질 정도로 길게 이어지고 있다. 나는 두 번째로 그의 콘서트에 놀러가게 된 셈이며 처음은 2009년 잠실 실내체육관에서의 관람이었다. 그 당시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려서 제이슨 므라즈가 이정도인가하면서 깜짝 놀랐었다. 그러나 알고보니 옆 체육관에서 동방신기인가 콘서트를 하고 있다고 그랬다나 뭐라나..
2009년, 그러니까 3번째 정규 앨범인 'We Sing, We Dance, We Steal Things'로 왕성하게 월드 투어를 하고 있는 도중이었다. 그때는 퍼커션을 담당하는 토카 리베라와 듀오로 공연에 올랐고 그 둘의 찰떡궁합 뒤에 기타, 베이스, 드럼이란 밴드 사운드, 그리고 공연 전체의 무게감과 분위기를 자아내는 브라스 3형제(민둥머리를 가진 3명의 멋쟁이시다!)로 구성되었다. 비교적 중대형 공연단을 갖추고 콘서트를 진행했으며, 여러 악기를 한 데 모은다는 점에서 사운드의 풍성함이 있었고, 투박한 록 음악 분위기가 아닌 다양한 소리를 오락가락 들려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기존 곡들도 브라스를 추가해 편곡을 거쳐 마치 처음 듣는 곡 같았다. 결론적으로 므라즈는 라이브 공연에서 주로 기존 곡들을 재해석해서 선보인다는 점이 핵심이었다. 제이슨 므라즈 공연을 한 번 간 사람은 아마 이런 재미로 다시 한 번 더 찾아가고 싶게 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의 이후 정규 앨범 'Love Is A Four Letter Word', 'YES!'가 둘 다 제이슨 므라즈의 디스코그래피에서 그렇다할 매력과 참신함을 보여주지 않는 거 같아서 사실 많이 즐겨듣진 않았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이번 내한공연에는 선뜻 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리곤 어제 3시간 가량의 공연을 신나게 보고 돌아왔다.
우선 그의 공연에서 변한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그는 YES! 앨범 작업은 레이닝 제인(Raining Jane)이라는 샌프란시스코 출신의 여성 4인조 밴드와 협업하기 시작했다.(사실 2007년 3번째 앨범의 'Beautiful mess'에서 처음 발을 맞췄다고 한다.) 므라즈는 새로운 앨범의 싱글곡 발표도 유튜브에서 레이닝 제인과의 무대를 통해 공개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이미 많은 팬들은 레이닝 제인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큰 의문을 가지진 못했다. 락-포크 밴드라고 소개하는 4인조 여성밴드는 여러 기타, 베이스, 콘트라베이스, 드럼, 퍼커션, 첼로 그리고 인도의 시타까지 악기 스펙트럼이 넓으며 다재다능하다. 덕분에 예전의 중규모 밴드에 비해 팀원이 부족했음에도 그들이 들려주는 사운드는 쉽게 싫증나지 않고 매 곡마다 신선할 수 있었다. 심지어 4인조 백보컬로써도 레이닝 제인은 예전 토카 리베라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녀들은 수준급의 아카펠라도 가능했고, 음색과 가창력도 여느 빌보드 가수보다 뒤지지 않을 정도였다. 특히 드럼, 퍼커션을 담당하는 모나 타바코리(Mona Tavakoli)는 흥겨운 춤과 재미난 리액션으로 관객들에게 웃음이 떠나지 않게 했다.
이렇게 5명에서 무대를 처음부터 끝까지 이끌었는데, 이들의 주특기는 므라즈를 포함한 5인이 어쿠스틱 악기들만을 들고 가로 세로 2미터되는 조명 아래서 스탠드 마이크 하나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요란하지 않게 연주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들의 팀워크는 어디하나 흠잡을 곳이 없었고, 그들은 공연을 하고 있다기보다 자기네들끼리 잘 놀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가까웠다. 그래서 그들 가운데서 부자연스러움은 어디하나 고개를 내밀었던 적이 없었다. 다시 말해서, 예전 제이슨 므라즈의 공연이 웅장하고 풍성한 사운드의 향연이었다면 요즘의 공연은 어쿠스틱풍으로 정갈하고 깔끔한 편곡이 주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세트리스트도 초기 앨범보다 신곡 위주로 짜여졌으며, 아무래도 레이닝 제인과 협업이 된 최신 앨범 곡이 가장 최우선으로 선곡되었다. 그나마 예전 곡들이 아무래도 더 친숙한 국내팬을 위해서인지 므라즈는 노래 사이사이 브릿지 형식으로 옛 노래를 섞어 부른 센스를 보여주기도 했다.
쭉 장점과 특징을 말했지만 그래서 100점을 줄 수 있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그렇지 않다고 답하고 싶다.
우선 세종문화회관 특성상 아마 관객들을 자리에서 일으켜세워 몸을 흔들게 하진 못했던 거 같다. 애초에 므라즈는 그렇게 흔들고 환호할 곡들이 없었기에 실내체육관이나 야외가 아닌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이 가능했겠지만, 공연 중반에 조금 늘어지는 분위기가 너무 길었던 측면이 있다. 다들 직장에서 일하거나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늦은 저녁 8시에 광화문으로 왔을 텐데, 그 푹신푹신한 좌석에 앉아서 어두운 곳에 조명하나만 켜놓고 잔잔한 어쿠스틱 기타로 곡 하나를 부르는 걸 보자니 관객들은 즐거움과 함께 졸음도 쏟아지기 쉬웠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듣고 싶은 곡을 너무 경시한 건 아닐까 생각이 든다. 1,2,3집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곡 절반 이상이 편성되어 있다. 하지만 공연에선 그 중 몇 가지 곡만을 제외하고 들을 수 없었고, 위에 언급한 대로 파급력과 인기가 다소 부족했던 4,5집 곡들이 많이 흘러나왔다. 마지막으로, 토카 리베라와 므라즈의 케미에 푹 빠지고 몇 년동안 익숙하게 들어온 나에게 레이닝 제인과의 무대는 2% 부족한 생각이 자꾸 들었다. 특히 므라즈가 파워풀한 보컬을 보여주는 부분에서 백보컬로 뒷바침을 해주는 역할은 레이닝제인의 부드러운 목소리로는 아쉬웠다. 이뿐만 아니라 자꾸 브라스 3형제도 생각나기도 했을 정도로 그 웅장한 세종문화회관을 채워줄 음악적 출력이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곁다리로 아쉬운 점을 꼽자면, 조명이다. 조명이 5명이 있는 그 공간을 충실하게 각맞게 비춰주지 못했다. 멋진 연주를 가끔은 어두운 곳에서 부르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마지막으로 이번 공연에서 가장 인상적인 곡을 하나 추가한다. 보통 므라즈가 독주하면서 한 곡을 다 부르는 경우는 드물다. 게다가 건반을 치는 건 더더욱. 피아노 독주로 스포트라이트 아래서 3 천명을 홀린 그 곡을 소개합니다! (이번 월드 투어의 일환으로 댈러스에서의 공연입니다. 같은 곡을 같은 방식으로 내한 공연에서도 불렀습니다.)